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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PF 부실사업장 정리는 '짧고 굵게'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28 18:17

수정 2024.02.28 21:48

오승범 건설부동산부장
오승범 건설부동산부장
건설업계가 잿빛 천지다. 이달 초 건설사 17곳이 무더기로 4월 법정관리설에 휩싸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곳이 적지 않다. 최근엔 자산규모가 3조원을 넘는 대형 시행사의 부도설까지 흘러나온다. 지방 미분양물량이 적체되고, 부지는 팔리지 않는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자 폭탄만 맞다 보니 유동성 고갈로 올해 상반기를 넘기기 어렵다는 게 소문의 요지다.

만에 하나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전개된다면 업계 전반은 물론 금융권에 미칠 후폭풍은 쓰나미급이다.
다만 명확한 팩트체크보다 '아니면 말고' 식 추정 등에 기반한 이른바 지라시로 신뢰성은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위기설이 현실이 된 태영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흉흉한 분위기만 짙어지고 있어서다.

이미 올 들어 부도 난 건설사는 5곳, 폐업한 곳은 565곳에 달한다. 지난주에는 건설산업연구원이 새마을금고 등 PF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곳을 감안하면 이번 PF위기가 과거 저축은행 사태 수준의 충격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보고서를 내놨다. 새마을금고의 올해 1월 말 연체율은 PF 부실 영향 등으로 한 달 만에 1%p 이상 급등한 6%대 후반까지 치솟은 상태다.

건설사들의 수익성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3~2022년 기업영업분석 기준으로 국내 건설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9%이다. 국내 전체 산업 평균 4.8%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이다. 지난해에는 3%대도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실적을 공개한 7개 대형 건설사 기준으로 연간 영업이익률은 2.9%이다.

수직급등한 건설비용 영향이 컸다. 건설산업연구원이 2020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분석한 중간재 건설용 물가의 상승률은 35.6%에 이른다. 공사비지수는 25.8%나 올랐다. 감당하기 어려운 원가부담에 목표치는 역주행 중이다.

DL이앤씨의 올해 수주목표는 11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2.0%나 쪼그라들었고, 대우건설도 지난해보다 12.9% 줄인 13조2096억원으로 낮춰 잡는 등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실적전망은 고꾸라지는데 올해 갚아야 할 회사채는 만만치 않다. 한국신용평가가 집계한 시공능력 50위권 주요 건설사들의 올해 만기 도래 회사채는 3조59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신용등급은 추풍낙엽이다. 중견 건설사들을 비롯해 일부 대형 건설사도 줄줄이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회사채 만기는 잇따라 돌아오는데 신용도 저하로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져 만기상환뿐 아니라 차환 발행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주 시공능력 30위권의 A사가 회사채 발행을 위해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수요예측에 나섰다가 전량 미달됐다. 앞서 대형 부동산신탁사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신용등급 하락 여파로 미달사태를 겪었다. 이는 회사채 발행금리 상승 등으로 이어져 재무부담을 가중시킨다.

실제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500대 건설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동성 조사에서 10곳 중 약 4곳은 자금난을 토로했다. 사업리스크 고조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자금조달은 막막한 사면초가 업체가 빠르게 늘고 있는 셈이다. 총선 이후 건설사들의 줄도산 공포가 녹아든 4월 위기설과 맞닿아 있다. 태풍의 눈은 정부가 예고한 PF 부실사업장 정리다. 규모와 파장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늦은 감이 있지만 긴 안목에서 필수불가결의 구조조정이라면 단기간에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칼바람이 이어지면 일시적 고통은 적을 순 있어도 경제와 기업의 성장활력 제고에 독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치밀한 대응책과 업체들의 고강도 자구책으로 '짧고 굵게' 수술할 수 있는 메스를 준비해야 한다.

winwi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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