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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만에 만난 첫사랑… 전세계가 공감할 인연 아닐까요" [인터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4 18:45

수정 2024.03.04 21:30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12살에 헤어진 두 남녀의 재회
낯선 이방인의 땅 美서 이어가
과거-현재-미래가 한곳서 얽혀
애틋한 두 사람의 감정 그려내
자전적 이야기 담아낸 로맨스
데뷔작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영화 미나리 제작 A24와 작업
"24년만에 만난 첫사랑… 전세계가 공감할 인연 아닐까요" [인터뷰]
"24년만에 만난 첫사랑… 전세계가 공감할 인연 아닐까요" [인터뷰]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맨위 사잔)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맨위 사잔)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버리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겠죠."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12살 나영의 엄마는 왜 영화감독, 미술가인 부모의 경력을 다 포기하고 이민을 가냐고 묻자 이같이 답한다. 20년 후 당시 부모의 결정이 딸의 오스카 작품상 후보 지명으로 이어질지 꿈에도 몰랐겠지만,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36·사진) 감독은 결과적으로 금의환향했다.

오는 10일(현지시간)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되는 가운데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오른 '패스트 라이브즈'가 6일 국내 개봉한다. '넘버3'(1997) '세기말'(1999) 송능한 감독의 딸인 송 감독은 개봉에 맞춰 내한해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됐다는 물음에 "아주 좋았다"며 "마치 집에 온 기분이었고, 영화와의 인연이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남편과 남사친 사이에서 인연 떠올렸죠"

'패스트 라이브즈'는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10여년간 극작가로 활동한 송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다.
여성감독의 데뷔작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작은 신의 아이들'(1986)의 랜다 헤인즈와 '레이디 버드'(2017)의 그레타 거윅 감독 이후 세 번째다. 한국인·한국계 감독으로선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2021년 한국계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이후 세 번째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 당시엔 한국어·영어를 오가는 대본 작업에 주변 걱정이 컸는데 '기생충' 이후 달라졌다"며 "지금의 모든 결과는 '기생충'이 열어준 길"이라고 말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과 '해성'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운명적인 이틀을 그린다.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전체 삼분의 일이 한국서 촬영됐고, 한국계 미국인 배우 그레타 리와 독일에서 나고 자란 한국 배우 유태오가 각각 주연했다. 또 오디션 당시 배역을 간절히 원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계 미국인 아내를 둔 존 마가로가 나영의 유태인 남편 '아서'를 연기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기존 디아스포라 영화와 다르게 이민자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로맨스와 인연을 소재로 한 점이 돋보인다. 송 감독은 "연극 작업 당시에도 늘 자전적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며 "뉴욕에 사는 저를 만나러 온 친구와 남편이 함께했던 어느 밤 술자리가 영화의 시작이 됐다"고 말했다.

"둘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다가 마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술을 마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부연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세 사람은 서로에게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데 인연이란 말밖엔 생각할 수 없었죠. 그래서 인연을 한국어 그대로 살렸는데, 이 감정에 이름이 없었을 뿐 전 세계 누구나 이해가능한 감정이라고 봤죠."

그는 '노마드 시대'가 된 지구촌의 풍경을 언급하며 "나영은 태평양을 건너 언어와 문화를 두고 대이동을 했지만, 요즘은 일 때문에 여러 도시나 나라를 오가고 언어도 여러 개 하며 살고 있다"며 "이렇게 굉장히 많은 시공간을 지나기 때문에 그 와중에 두고 가는 자신의 어떤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패스트 라이브즈'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제목이 '전생'인 이유를 설명했다.

■'미나리' A24와 CJ ENM 공동제작

그동안 연극 작업을 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영화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송 감독은 "장소와 시간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영과 해성에게 악당(빌런)은 24년이란 시간과 둘 사이를 가로막은 태평양이었죠. 서울과 뉴욕도 또다른 주인공이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36살의 나영은 12살의 나영이 아니지만, 같은 사람이라는 모순을 표현하기 위해선 영화로 만들어야 했다"고 부연했다.

디지털이 아니라 필름으로 찍은 이 영화에서 서울은 나영이 이민을 갔던 그 시절의 감성이 담겨있다. 성인이 된 나영과 해성의 뉴욕 데이트는 묘한 긴장감을 안기고, 나영과 아서의 침대 대화 장면은 이 영화가 단지 삼각관계 로맨스가 아님을 사려 깊게 드러낸다.

송 감독은 "제가 추구하는 남성성은 나도 상처받고 질투하고 이기적 마음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런 감정을 잠시 보류할 줄 아는 것"이라며 "세 사람은 서로를 위해 (마음의) 자리를 내어준다"고 표현했다. "서로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삶에 깊이가 생기고, 더 특별해지죠."

한편 '패스트 라이브즈'는 영화 '미나리',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을 제작한 A24와 CJ ENM이 공동 제작했다.
한국 개봉을 맞아 내한한 사샤 로이드 A24 인터내셔널 대표는 "송 감독이 극작가로 활동했던 때부터 재능을 알아봤다"고 말했다. 또 오스카 후보 지명과 관련해 "아름답고 로맨틱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든 송 감독의 힘"이라고 답했다.


로이드 대표는 "A24는 늘 아티스트를 중심에 둔다"며 "한국은 현시대 최고 크리에이터들의 산실이라 더 많은 (한국) 감독과 작업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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