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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 칼럼] 어쩌다 새(鳥)의 수난시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4 18:51

수정 2024.03.04 18:51

새의 긍정적 이미지 퇴색
'의새'등 사회적갈등 상징
출구전략 찾아 도약 기대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새의 이미지는 통념상 긍정적이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앵무새는 금실 좋은 부부 관계를 가리킨다. 동화 속 파랑새는 행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트위터 로고였던 파랑새 캐릭터는 창업자가 15달러에 구매했던 게 원조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뒤 X로 바꿔버렸지만, 트위터의 상징이던 파랑새에 대한 추억은 여전하다. 상상의 새 봉황은 새 중의 왕이다. 성스러움뿐만 아니라 명성과 재물의 상징이다.
대통령실 상징체계(CI)에도 대한민국 수장의 상징인 봉황이 담겨 있다. 봉황이 대한민국의 자유·평화·번영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1970년 발표된 소설 '갈매기의 꿈'은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이상형을 그렸다.

직립보행하는 인간은 땅에 붙어산다. 대륙에서 예측할 수 없는 위협에 시달린 인간은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을 키워간다. 이는 땅과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는 새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고, 새의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각인됐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새 이미지는 부정적 어감을 갖게 됐다. '나 완전히 새됐어' 가수 싸이의 2001년 정규 1집 타이틀곡 '새'에 등장하는 가사다. 상대방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성의를 다했는데 본인에게 돌아오는 게 없어 허무한 상태를 지칭한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한탄하는 은어다. 그런데 하필 왜 새를 콕 집어서 은어를 만들었을까. 새들 입장에서 갸우뚱할 만한 의문이다. 여러 주장 가운데 솔깃한 배경이 있다. 한자 새(鳥)의 구성요소인 음과 훈(뜻)에 따르면 '새 조'가 된다. '조'에 'ㅅ'을 받쳐 발음할 때 욕설이나 비속어가 될 논란을 비켜가려고 '새됐어'로 우회 표현했다는 주장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싸이의 가사가 도발적이었던 점을 곱씹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석이다.

'새됐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로 왕성한 확장성을 보인다. 판사가 법의 본뜻을 외면하고 궤변으로 법을 왜곡했다며 경멸당하는 표현이 '판새'다. 요즘엔 의대 증원이 촉발한 의사 파업 과정에 '의새'가 출몰했다. 의사들 사이에서 SNS를 중심으로 '의새 챌린지'가 유행한단다. 의사와 새를 합성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만들어 올리거나 프로필 사진을 교체하는 식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브리핑에서 '의사' 발음이 '의새'로 들린다는 논란이 발단이다. 그런데 판새나 의새나 조류를 뜻하는 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새의 발음만 끌어다 썼을 뿐이다. 의사를 비하하는 비속어를 만드는 과정에 '새'를 끼워 넣은 단어조합이다. 그럼에도 의새 챌린지의 주인공은 온통 '새'로 도배질이 됐다. 의사 집단을 성토하는 쪽에서 '의새'란 환자를 돌보는 직업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과 명예만 좇는 기득권 집단을 비하하는 용어로 썼다. 반면 의사 집단의 SNS 내용에선 의새는 두 가지 의미를 담는 듯하다. 의사를 비난하는 '의새'를 자기비하로 차용하면서 비난여론에 냉소적으로 대처하는 식이다. 또 한편으론 묵묵히 의료인의 길을 걸어왔건만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당해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는 한탄조로도 들린다. 후자의 관점은 '완전히 새됐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새를 빗댄 은어들은 착오를 일으킨다. 새의 본질적 속성은 나는(flying) 것이기 때문이다. 날지 않는 새의 날개는 퇴화하고 만다. 그렇다고 날개 한쪽으로 날 수도 없다. 양 날개로 나는 새만이 하늘을 가를 수 있다. 소통의 메신저이자 균형 잡힌 양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새가 전통적인 새의 긍정 이미지다. 의사 파업도 마찬가지다. 집단 간 갈등에 '새'를 끌어들여 빗대는 건 직설적인 어법을 쓰기 부담되기 때문이다. 한 치도 물러설 의향 없이 우회적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려 무력화하려 들면 패자만 남는다.
한쪽 날개로 날겠다는 강압과 오만이 충돌하는 형국이다. '새됐어'가 아닌 '새답다'로 국면 전환하려면 소통으로 출구전략을 짜야 한다.
치킨게임 끝에 추락해버린 의사의 위상과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손실이 될 것이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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