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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낙제 못 면한 노동시장, 개혁의 칼 다시 들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6 18:40

수정 2024.03.06 18:40

美 헤리티지재단 평가서 또 하위권
시장경직 등 고질적 문제 개선 안돼
그래픽=뉴스1
그래픽=뉴스1
한국 노동시장 경쟁력이 해외 기관으로부터 또 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외국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 노동법규와 노사문화가 여전히 후진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최근 발표한 '2024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종합평가에선 전체 184개국 중 14위를 기록했지만 노동시장 항목은 '부자유' 등급으로 분류됐다. 구체적인 노동항목 점수는 57.2점으로 사실상 낙제 수준이다. 미국은 이 항목에서 78점, 이탈리아 70.7점, 일본은 68.6점을 받았다. 헤리티지재단은 경직된 시장규제, 강성 노조활동 등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한국 노동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졌다는 주장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했던 것 역시 노동시장 리스크였다. 채용과 해고 규정이 까다롭고, 이로 인해 노동비용이 많이 들어 기업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게 외투기업들의 한결같은 불만이었다.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의 국내 복귀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역시 다르지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평가에서도 한국 노동시장 경쟁력은 매번 바닥을 면치 못했다.

똑같은 지적이 반복되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것은 강성 노조의 세력이 여전히 굳건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대화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 MZ노조가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현장은 아직도 투쟁과 대결의 노사문화가 우세하다. 대형 노조는 회사가 수용할 수 없는 과도한 요구로 떼를 쓰는 데 익숙하고, 심지어 반정부 투쟁의 선봉 역할까지 자처한다. 해외 투자자들의 눈에는 낯설고 희한한 풍경일 것이다.

후진적 노조문화와 시대에 뒤처진 노동법규는 급변하는 산업전환기에 치명적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지금의 노동 형태는 70년 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와 비교하면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큼 달라졌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IT업종으로 산업은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달라진 노동시장에 부합하는 제도와 법규가 뒷받침돼야 산업이 경쟁력을 갖는 것은 물론이다.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나 경직된 채용문화로는 인력을 원활하게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임금체계도 과감히 개편하지 못하면 인재유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제의 경직성에 대해선 대법원까지 제동을 걸었다. 근무방식을 지금보다 유연하게 허용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정부는 후속 법규 개정작업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초과근무 계산 단위는 1개월, 분기, 반기, 연간 등으로 크게 넓힐 필요가 있다. 해외에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칼을 뽑았지만 노조의 '주 69시간' 프레임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낡은 법규는 수술대에 올려 현실에 맞게 고칠 수밖에 없다. 노조도 강성 깃발을 내리고 대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노동 낙제점으론 성장도,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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