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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도면 유출보다 심각한 인재 스카우트 대책 세워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7 19:04

수정 2024.03.07 19:04

SK직원 美마이크론 이직 법원 제동
핵심인력 체계적 관리 방안 마련을
컴퓨터 회로판의 반도체칩 /사진=뉴스1
컴퓨터 회로판의 반도체칩 /사진=뉴스1
첨단 반도체 기술유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법원이 고대역폭메모리(HBM) 후발주자인 마이크론 임원으로 이직한 SK하이닉스 전 연구원에 대한 전직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A씨는 SK하이닉스 퇴직 무렵 마이크론을 비롯한 경쟁업체에 2년간 취업하거나 용역·자문·고문 계약 등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이후 2022년 7월 SK하이닉스를 퇴사해 미국 마이크론에 임원급으로 이직했다. A씨의 전직금지 약정이 몇 개월 남은 상태에서 이직한 것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이번 사건은 기술도면이나 특허자료를 빼돌리는 일반적 기술유출과는 다른 형태다. 기술 전반을 체화하고 있는 핵심인재가 경쟁사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보통의 유출사건보다 오히려 심각성이 크다.
A씨는 SK하이닉스에서 D램과 HBM 설계 관련 총괄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HBM 분야에서 후발주자였던 마이크론은 최근 고사양 HBM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히며 시장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전까지 SK하이닉스가 관련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삼성전자도 선도적 입지를 굳히고 있었는데 짧은 기간에 마이크론이 약진한 것이다. A씨가 전직한 시점을 따져보면 마이크론이 단기간에 급부상한 것과 A씨 역할의 관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법원은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위반 시 1일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례적으로 높은 액수다. A씨의 전직금지 약정이 5개월가량 남은 가운데 이 같은 가처분을 받아들인 것은 기술유출의 심각성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첨단 반도체 전쟁이 갈수록 첨예화되는 가운데 외국 경쟁사들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의 핵심인력을 빼 가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핵심인재의 이직이 전에 몸담았던 기업에 끼치는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그런데도 머릿속에 기술을 담은 인력을 빼 가는 스카우트를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은 일반적 기술유출보다 더 큰 문제다.

물론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로막을 순 없다. 그렇다고 전직 이전의 약정계약마저 속수무책으로 파기되는 상황이 관행화되면 우리 기업들이 입을 피해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기술유출 피해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전체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적발사건은 전년보다 3건 늘어난 23건에 이른다. 3분의 2인 15건이 반도체 분야다.

핵심인력의 전직을 통한 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인력의 시스템적 관리방안이 필요하다. 기술유출 관련 전직금지 가처분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가처분 소송에서 이겨봤자 전직 제한기간을 1, 2년밖에 두지 않는 데다 보호기술 대상인지 분별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정부는 직접 기술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보고 속히 제도정비에 나서야 한다.
기술 전문인력을 지정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유출행위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힘들게 개발한 기술이 전직하는 사람을 통해 빠져나가 버린다면 그동안 흘린 피땀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술개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개발한 핵심인력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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