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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수사력 비웃으며 활개친 보이스피싱, 당국 뭘 했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7 19:04

수정 2024.03.07 19:04

작년 피해 35% 늘어 2000억 육박
범정부적 대응에도 속수무책인가
2016년 보이스피싱 피해 실화를 바탕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시민덕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2016년 보이스피싱 피해 실화를 바탕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시민덕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보이스피싱 척결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수사당국이 보이스피싱 엄단 발표를 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비웃기라도 하듯 그 피해가 줄어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7일 발표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지난해 1965억원으로, 전년보다 35.4% 증가했다. 1인당 피해액도 1710만원으로 50% 이상 늘었다. 특히 1억원 이상 뜯긴 피해자가 231명이나 된다.
대출 빙자, 가족·지인과 정부·기관을 사칭해 돈을 뜯어갔는데 비중이 각각 30%가량 된다. 20대 이하 피해자가 12%로 빠르게 늘고 있는 점은 충격적이다.

보이스피싱은 불황에 더 기승을 부린다. 온갖 신형 수법으로 진화하며 악성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다. 공모주 사전청약, 저금리 생활대출, 온라인 구매대행 등 갖가지 변종이 생겨나고 있다. 무심코 URL을 클릭했다간 피싱 페이지로 연결돼 개인정보를 털리게 된다. 이것이 보이스피싱 등에 다시 악용된다.

최근엔 더 대담해지고 있다. 검찰 등 국가기관을 사칭해 계좌가 불법 탈세에 연루됐다며 겁을 주면서 이성적 판단이 어렵도록 궁지로 몰아 순식간에 돈을 뜯어가는 사기도 빈발한다. 통신사기 피해액을 환급해 준다며 소액의 돈을 먼저 입금한 뒤 더 많은 돈을 갈취하는 일도 있었다.

보이스피싱은 악질 중의 악질 범죄다. 민관이 함께 대응하지 않고선 척결이 요원하다. 우선 관련 법 규정을 개정해 법정 형량을 크게 높여야 한다. 지난해 11월 필리핀에 거점을 둔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등에게 법원이 최고 징역 35년형 1심 선고를 내린 것은 중형 선고의 첫 사례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폭력·마약범죄단과 연계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한번 잡히면 다시는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경각심을 높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6년 실화를 바탕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수익 해외 일자리 유혹에 빠진 청년들을 감금 폭행하는 범죄조직, 경찰의 방관과 소극적 대응, 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 섬뜩한 현실들이다. 특히 20~30대 청년들이 고액의 아르바이트 유혹에 속아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연루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적극적인 수사와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올 8월부터 은행들은 보이스피싱 의심거래 탐지, 지급정지 등 금융회사의 24시간 대응체계를 가동한다. 또 비대면 금융사기 책임분담 기준에 따라 은행이 피해금액의 20~50%를 배상한다. 이를 계기로 은행들이 의심거래를 차단하는 노력과 대국민 예방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서민이 많이 이용하는 제2금융권도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범정부 보이스피싱 대응 통합센터를 가동하고 있는데 결과를 보면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처럼 지능화하는 범죄에 역부족인 모양새다.
수사체제를 재점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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