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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욱의 탈모 백과사전] 모발이식 120년 역사 속 다양한 연구사례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9 07:00

수정 2024.03.09 07:00

[파이낸셜뉴스] 탈모 백과사전은 모발이식 명의로 잘 알려진 모제림 황정욱 대표원장이 탈모 및 모발이식과 관련한 정보를 전하는 전문가 칼럼으로, 탈모 자가진단 방법, 다양한 탈모 발현 유형, 모발이식 수술, 탈모치료 약물 등 자세한 이야기를 전문가에게 직접 전해 들을 수 있다. <편집자 주>
[황정욱의 탈모 백과사전] 모발이식 120년 역사 속 다양한 연구사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를 비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국내에서 모발이식이 대중화된 것은 아직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지만, 사실 모발이식의 시작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7년 튀르키예 의사인 ‘메나햄 호다라’가 피부병 가운데 하나인 황선(favus)에 의해 탈모가 진행된 부위에 건강한 두피를 봉합 이식한 사례를 모발이식의 시작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공여부(모발을 제공하는 부위)의 모발이 수여부(모발을 이식받는 부위)에서 생장함을 확인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10가닥 이상의 머리 뭉치를 뽑아 이식하는 ‘펀치 이식술’이 주로 시행됐다. 이후 마이크로 펀치 이식술, 모낭 단위별 이식술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국내에서의 모발이식은 일제 강점기 소록도에서 처음 시작됐다. 1917년부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집단 수용해 왔는데, 이때 눈썹 탈모가 진행된 한센병 환자들에게 눈썹을 심어준 사례가 국내 모발이식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일본 ‘오쿠다와 후지타’가 1936년과 1942년에 각각 작은 이식 편으로 두피 화상 환자를 치료했다. 미국의 ‘바스키’는 1950년에 두상의 화상 부위에 음모와 겨드랑이 털을 이식했다. 이를 통해 두피에서 음모와 겨드랑이털 특성의 체모가 자람을 밝혔다. 미국의 ‘오렌트라이히(Dr. Norman Orentreich)’는 1959년에 체모의 특성은 다른 곳에 이식해도 성질이 변하지 않는 공여부 우성 개념을 정립했다.

여기서 공여부 우성 개념은 모발이식에 필요한 다양한 조건들(모낭 채취방법, 모발밀도, 쉐딩현상 등) 가운데 핵심으로 꼽힌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모발을 다른 부위에 옮겨 심어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것, 이것이 공여부 우성 이론(Donor Dominance Theory)이다.

역사적으로 의사들은 머리카락 외의 다른 체모를 이식하는 연구도 진행했으나, 실제적인 미용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또한 머리카락을 눈썹이나 음모에 이식했을 때, 이식된 모발이 너무 길게 자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이식된 모발이 원래의 성장 패턴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중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모발이식은 과거 많은 의사들이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다양한 임상사례를 통해 정립된 방식이다. 지금도 탈모치료와 모발이식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에 임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있다.


단순히 모발을 옮겨 심는 과정에서 그치지 않고 환자와 모발이식 의료산업의 미래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의료진과 함께 탈모치료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한다면, 치료의 결과는 성공적일 것이다.

/황정욱 모제림성형외과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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