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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죄 짓는거 아닐까요" 이혼 머뭇거린 어머니[박주현 변호사의 '가족이 뭐길래']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9 10:50

수정 2024.03.09 10:50

자녀 있는 가장 대부분 이혼 어려워해
계획 구체화되면 자녀에게도 당당해져
상담 과정서 '제2의 인생' 명확히 세워야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파이낸셜뉴스]이혼할 때 가장 걸리는 것이 ‘자식’이라고 한다. 애들을 생각하면 이혼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는 의뢰인이 많다. 미안함의 종류는 제각각이다. 이혼 후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것에 대한 미안함, 친구들의 수군거림에 대한 미안함, 이전과는 다른 교육 수준이나 가계 재정에 대한 미안함 등. 아마도 그 미안함은 이혼하는 시기의 불안정한 생활에서 조성된 정서가 미치는 모든 감정 현장에 대한 통칭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미안한 마음에는 구체성이 없다. 구체성이 없다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달리 보면 실체가 없는 막연한 감정이고,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혼 후 맞이할 제2의 인생에 대한 걱정과 같은 맥락이다. 제2의 인생 계획이 어느 정도 명확해지고, 연했던 색깔이 그러데이션 효과처럼 점점 강하게 고유의 색깔을 찾아갈 즈음엔, 자녀들에게 미안했던 마음 역시도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부모의 부재를 슬기롭게 극복해 준 고마움과 대견함이라는 본래의 형태를 찾아간다.

자녀 때문에 버텼는데, 자녀 때문에 미안해해
필자가 수임하는 이혼 소송 사건의 대부분은 자녀가 있는 가정이다. 자녀가 없는 가정은 있는 가정보다는 이혼이 수월한 경우가 많고, 협의이혼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의뢰인은 자신의 '미니미' 같고, 자신을 너무나도 똑같이 닮은 두 딸에 의지하면서 살았다. 두 딸이 아직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으니, 경제적으로 의지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시어머니와 남편의 핍박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만 같은 위태위태한 혼인 생활을 간신히 버티는 힘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런 혼인 생활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이미 답은 ‘이혼’으로 정해져 있고, 양쪽에 두 딸의 손을 잡고 이혼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이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대처할 수는 있는지, 대처할 방법은 있는지,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어떤 물음 하나에도 답이 없는 그 상황에 자기 손을 잡고 있는 자녀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전업주부로 남편의 생활비에 의지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경제력이 없었고, 부족한 생활비에 대해서는 무조건 아내의 사치와 과소비 탓이라는 남편의 근거 없는 핍박 때문에 남편 몰래 받은 대출금도 있었다. 대출금 사용 내역을 보니 거의 만 원 내외의 편의점, 마트 등 기본적인 식비 위주의 결제 내역이었고, 딸들과 외출하면서 사주는 간식비 정도의 금액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투자하고 운영하는 식당이 세 개 있었고, 더 늘려나갈 예정이었다. 한집에 살면서 경제적으로 남편은 풍족하고, 아내는 궁핍했다. 이혼해도 줄 돈은 한 푼도 없다는 남편의 말에 정말 그럴 것으로만 알았고, 그래서 ‘이혼’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막막하고, 두 딸에게 미안하기만 하였다.

ⓒ News1 DB /사진=뉴스1
ⓒ News1 DB /사진=뉴스1

상담 후 자신감 찾은 어머니
그렇지만, 이혼하면서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반드시 양육자가 되지 않아도 자녀들이 행복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남편이 자녀들의 양육자가 되고, 아내는 가까이 살면서 잠시라도 멀리 떨어지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자녀들을 자주 면접 교섭할 수 있고, 또 아내는 재산분할로 받은 돈으로 작은 월세 집이라도 마련하여 단출하게 지내며, 결혼 전에 하던 간호조무사 일을 하여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계획이 구체화되어 갔다. 아내는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자녀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은 점점 사라진 듯했다. 필자가 최초 상담시 “엄마는 딸들에게 죄인이야”라고 쓰인 의뢰인의 얼굴에서 “엄마는 강해졌고 행복해졌어”라고 덧쓴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사건만큼 의뢰인이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많이 울었던 사건이 없었고, 그만큼 필자가 의뢰인에게 제2의 인생에 막막함을 느끼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결혼 만큼 이혼도 쉽지 않은 일
어느 누가 이혼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결혼만 하더라도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아직 결혼까지는 약속하지 않은 연인으로서의 관계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이어지다가, 결혼을 약속하고, 상견례를 하고, 날짜를 정하고, 웨딩 촬영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돌아와서 신혼의 기간을 가지다가 출산해서 자녀가 있는 가정을 이룬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해야 한다면 돌아가기 전부터도 진이 빠질 것이다. 그만큼 자녀가 있는 가정을 이루기는 쉬운 것이 아니다. 쉽게 조립된 것이 아니니 해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자녀가 그 일부가 되어 함께 이룬 것을 부모 마음대로 없애는 것에 마음이 쓰이겠지만, 어떤 모습의 인생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자녀에게 그 새로운 인생을 안내하는 힘도 생길 것이고, 그렇게 다시 함께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자녀는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부부가 손을 잡고 걷지 않아도 자녀는 아빠와 엄마의 손을 동시에 잡고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새로운 목표를 정한 길을 찾아서 자녀를 이끌어 줄 수 있다면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조금은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필자 소개]
박주현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법무법인 중용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형사 및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내변호사 박변호사’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는 공익성을 가진 특수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의뢰인에 대한 최선의 법률서비스와 변호사로서의 공익적 사명감이 조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은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박주현 변호사의 신념이라고 한다.

법무법인 중용 박주현 대표 변호사
법무법인 중용 박주현 대표 변호사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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