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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5000억짜리 재난안전통신망, 정작 재난현장선 외면 [재난안전 대한민국(10)]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0 18:15

수정 2024.03.10 18:15

망 품질 떨어지고 비싼 단말 탓에
이태원 등 재난현장서 활용도 뚝
재난업무 통합 앱으로 개발 필요
1조5000억원을 투입해 구축한 국가 재난안전통신망이 정작 재난현장에서는 작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소방·해경 등 재난관련 기관들이 재난 대응업무에 활용하기 위해 전용으로 사용하는 전국 단일의 무선 통신망으로 지난 2021년 3월 구축했다.

광대역 무선통신기술(LTE)을 기반으로 산불, 지진, 선박 침몰과 같은 대형 재난 발생 시 재난관련 기관들의 신속한 의사소통과 효과적인 현장대응을 위해 구축됐다. 그러나 피해가 컸던 재난현장에서는 활용도가 극히 낮았던 것으로 나타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단말기 구입비용 부담 증가…기존 무선망 선호

이태원 참사 이후 재난안전통신망 이슈가 부각되면서 국회 진상조사 과정에서 참사 당시 관련 기관에서는 기존 무전망을 사용하거나 혹은 개인 무선전화를 통해 교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해 오송 지하차도 재난현장에서도 이런 문제는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물론 그동안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이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22년 울진 산불 당시 산림청, 소방청, 경찰청, 군부대, 지자체 등이 재난안전통신망을 활용해 공동 대응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에 처했을 때 경찰, 군, 의료기관이 백신수송, 호송, 그리고 물류, 접종센터 경계에 이를 활용함으로써 K-방역이 전세계적으로 모범 사례에 등극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이후에도 현장에서 작동이 어려웠던 이유는 단말기 구입 비용 등 각 기관이 처한 예산 문제와 신기술 도입에 따른 혼란이다. 재난대응을 위해 각 기관에서 스스로 재난안전통신망 전용 단말기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해야 했다. 1대 당 100만원이 넘어갈 정도로 고가의 스마트폰형 단말기를 구입하데 따른 부담이 컸다. 재난안전 업무는 긴급한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소통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재난안전 분야에서의 조직 소통은 더욱 중요하다 정부 부처 간 실시간 소통을 위한 표준운영절차(SOP) 및 매뉴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난기관간 소통 매뉴얼 마련해야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한 소통은 비록 기록이 남긴 하지만 실시간 음성 대화를 통한 것으로, 기존 정부 부처 내에서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형태다. 또 신기술 도입에 따른 활용의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기존 체제에 익숙하다보니 신기술 도입에 미처 준비가 안돼 활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기술 도입을 위한 명확한 표준운영절차(SOP)와 매뉴얼이 필요한 이유다. 재난대응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교육 및 훈련이 꾸준히 이뤄질때 실효성이 담보될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망 품질도 재난대응 역량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안전통신망 개통 이후에도 통화 품질이 낮았고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거나 지하에 들어가면 음영 지대가 펼쳐져 있는 경우가 많아 건물 지하나 산에서 구조·진화 작업을 수행하기에는 벅찼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재난안전통신망 활용도가 예상처럼 증가하지는 않았다. 망 품질이 충분히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고가의 예산을 투입해 기기를 보급하는 것이 부담이 됐다. 특히 재난 현장에서 무전은 곧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인데 통화 품질이 좋지 않고 통신 장애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은 재난안전통신망 사용을 꺼리게 하는 주된 이유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재난안전 업무에서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를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말기의 사용자 편의성이 담보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용자 상당수가 애플리케이션이 너무 부족하다거나, 인터페이스가 불편하고 사용이 힘들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소방 경찰 등 현장에서 일하는 재난관련 공무원들은 항상 전화로 소통을 하고 재난안전통신망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상황이 긴박할 때는 기존의 핫라인이나 유선전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는 연락이 자주 끊겨 작전용으로 사용하기 적절치 않다는 사용자들도 많았다.

사용자들은 재난안전 관련 업무에서 위치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 상용 인터넷망에서 개인 스마트폰을 활용해 카카오맵, 네이버맵과 같은 민간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따라 네트워크에서 사용 가능한 유용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필요성이 요구된다.


재난 예방 및 대응 업무의 주요 통신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가 재난 업무 전반을 망라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재난안전통신망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앱 수요 조사를 거쳐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배포한다거나, 혹은 공모전과 같이 외부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모해 개방형 혁신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이 경우 지자체, 경찰, 소방, 해경 등 각각의 기관의 업무 특성을 고려한 기관 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서 각 기관 간의 공동 업무를 보조·지원하는 기관 간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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