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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위기의 K반도체… 기술유출 '발등의 불'

김홍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1 18:34

수정 2024.03.11 18:34

김홍재 정보미디어부장 산업부문장
김홍재 정보미디어부장 산업부문장
2014년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반도체 굴기(屈起)'를 선언했다.

반도체를 육성해 미국을 누르고 G1(주요 1개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 따라 지난 10년간 총 3429억위안(약 63조원) 규모의 '국가 집적회로 산업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겠다며 '칭화유니'(쯔광그룹·紫光集團)를 중심으로 대규모 자금 투자와 함께 반도체 인재 영입에 나섰다.

당시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던 기자의 눈에도 칭화유니를 비롯한 반도체 관련 기관, 대학, 기업 등의 인재 영입은 도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중국은 내수시장에서 가전, 자동차에 이어 휴대폰 부문에서도 1위로 올라섰지만 반도체 기술만큼은 한국이 '넘사벽'이었다. 결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서 인재를 빼내기 위해 연봉의 수십 배를 한꺼번에 제시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한국 반도체 기업 인재 빼가기에 가세했다.

그 이유는 뭘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반도체 제조에 큰 관심이 없었다. 1980년 이후 반도체 산업은 효율성 관점에서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팹리스(Fabless) 기업과 제조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대만 등으로 분화됐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반도체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앞세워 반도체 제조기업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AI반도체에 대한 수요 폭발은 미국의 반도체, AI 관련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들까지 반도체 제조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반도체 인재 쟁탈전은 불가피하다. 결국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가 더 우수한 인재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생존을 좌우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안일함을 넘어서 반도체 인재를 지키려는 의지마저 의심케 한다.

최근 법원은 SK하이닉스가 20여년을 근무했던 핵심 연구원이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 임원으로 옮긴 사실을 확인해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지 7개월이 지나서야 인용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SK하이닉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를 어길 시 하루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사안의 긴급성을 감안할 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 연구원은 SK하이닉스에서 AI 시대를 맞아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수석, HBM 디자인부서 프로젝트 설계총괄 등을 역임해 HBM 기술은 물론 메모리반도체 D램 관련 기술도 마이크론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만년 메모리반도체 업계 3위인 마이크론이 지난달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빨리 5세대 HBM인 'HBM3E'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AI반도체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가 2·4분기 출시하는 'H200'에 이를 탑재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까지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직원이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외에도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우리나라의 미래 핵심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행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기법)에 국가핵심기술을 취급하는 인력의 이직관리 및 비밀유지 등에 관한 조항이 있지만 개인의 직업이동 선택에 관한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 적용이 쉽지 않다.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촘촘한 법 개정과 함께 필요하다면 특별법 제정에도 나서야 할 때다.

hj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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