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서초포럼] 산업형 ODA가 더 필요한 이유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2 18:42

수정 2024.03.12 18:42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2010년 1월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 사상 최악의 지진(리히터 규모 7.0)이 발생했다. 폐허가 된 아이티는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불모지가 되었다. 이때 발상을 전환해 세아상역㈜은 '세아학교'를 세워 무상교육을 지원하고, 2년 뒤 아이티에 1000억원을 투자해 의류공장을 설립했다. 현재 세아아이티 법인은 직원 수 1만명, 대미수출액 300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해 '아이티의 희망'으로 불리고 있다.

세아상역㈜이 성공한 것은 전략적 접근과 과감한 투자의 결실이지만, 숨은 공신이 또 있다. 우리 정부가 시행한 공적개발원조(ODA)가 그 주인공이다.
세아상역㈜의 공장 설립 이후 한국 정부는 의류기술훈련원을 건립해 전문인력 육성을 지원했고, 소나피공단 배전설비를 업그레이드해 산업단지 전력문제 해결을 도왔다.

이처럼 ODA를 수혜국 산업발전은 물론 자국 산업의 이익 확보에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산업형 ODA'라고 한다. 수혜국과 공여국의 산업계가 윈윈하는 전략이라는 의미에서 달리 '상생형 ODA'나 '산업개발 ODA'로도 불린다. 특히 산업형 ODA는 해외사업 기회를 발견하고도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기업에 '가뭄에 단비' 같은 정책이다. 아무리 개도국이라도 국가단위 사업에는 개별기업이 감당키 힘든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산업형 ODA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첫째,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베트남에 지난 30년간 20억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ODA를 제공했다. 사업 초기에는 기술개발에, 최근에는 탄소감축에 중점을 두고 ODA를 실행해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초기 기술지원은 독일의 제품과 기술을 공급하는 사업이고, 최근의 탄소중립 지원사업은 베트남에 진출한 독일법인들이 생산한 제품이 수출이 잘되도록 돕는 사업이다. 결국 독일은 베트남을 사업파트너로 키우는 데 30년간 공을 들인 셈이다. 우리도 이처럼 지속적·장기적인 안목으로 ODA 사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산업형 ODA를 공급망 다원화와 연계해야 한다. 최근 미중 기술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공급망 다원화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첨단산업에 쓰이는 필수소재 광물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다원화는 우리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최근 수교한 쿠바만 해도 2차전지에 들어가는 니켈과 코발트의 주요 매장지 중 하나다. 이러한 개도국들에 산업형 ODA를 시행한다면 우리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도울 수 있다.

셋째, 산업계 의견을 ODA 의사결정에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 입장에서 산업형 ODA를 활용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신청과 심사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공익성을 이유로 민간의 의견을 직접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사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기업을 포함한 민간부문의 의견을 대폭 반영해야 한다.

또한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에 출연하는 간접지원 방식보다는 한국 정부와 우리 기업이 생색낼 수 있는 직접지원을 늘려야 한다.

최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전 세계의 핵심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반구에 주로 분포한 개도국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풍부한 인구와 자원을 보유한 이들 국가는 성장잠재력이 높은 전략적 요충지다.
산업형 ODA를 앞세운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사우스에 한국 경제의 기치를 휘날리는 미래를 꿈꿔 본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