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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나라살림, 규칙기반 운용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3 18:34

수정 2024.03.13 18:34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나라살림이 화수분이 아니기에 정부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걷거나 아니면 빚을 져야 한다. 과거에 정부의 역할이 경찰, 국방, 외교 등 단순했을 시절에는 지출을 수입에 맞추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발전, 사회보장, 연구개발, 국토교통 등 국민의 삶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정부에 기대하는 몫이 커지면서 거둬들이는 세금만으로 살림을 감당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게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누적된 빚은 언젠가는 이자와 함께 원금을 갚아야 하기에 우리는 세대 간 부담의 공평성을 고민하게 된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장기적 전망이 암울하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 처음 적자를 기록하고 2001년 기금이 고갈되었으며 2023년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투입한 보전금은 5조6000억원이다. 군인연금은 더 심각하다. 1973년부터 적자를 기록, 보전금을 받기 시작해 작년에만 3조1000억원의 재정이 투입되었다. 현행 제도가 유지되면 2039년 적자로 돌아서 2054년 적립금 고갈이 예상되는 국민연금이 이후에도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35% 내외까지 인상해야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한 해 동안 의료비로 지출한 사회보장 급여비가 이미 100조원을 넘어섰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되었을 때 보험료는 월급의 3%가량이던 것이 지금은 7%를 넘어섰고, 앞으로도 계속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현행 제도가 유지될 경우 내년 재정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에는 누적준비금이 소진되며 2032년 누적적자 규모는 61조6000억원에 달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도 같은 추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들을 모두 합한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는 2043년 적자로 전환되고, 2070년에는 적자 규모가 209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2020년 기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위로 평균인 14.2%보다 3배나 높다. 따라서 우리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적 연금개혁과 함께 적절한 수준의 노후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소득 하위 70% 노령층에 적용되는 기초연금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합 운영, 노인빈곤 문제를 정조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노인빈곤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국민연금은 소득비례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기초연금이 없었기에 상당한 수준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포함되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고, 특히 보험료 인상에 따른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이런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 3대 특수 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재정의 장기적 지속가능성 문제와 함께 단년도 재정운용에 있어서도 적자 누적구조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재정운용의 핵심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유지하면서 중단기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응하는 유연한 재정운용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경기침체 등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재정운용을 위해서는 적정수준의 재정여력(fiscal space) 확보가 중요하므로 이를 위해서는 기존 재정지출의 구조조정 및 효율화 추진이 필요하다.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의 출발점은 중립적인 경제 및 세수전망과 기존 지출의 기준선 전망에 근거한 재정총량 상한을 설정하는 것이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현금성 지원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복지지출의 총량한도를 도입해 회복탄력성을 제고하고 규칙기반(rule based) 재정운용, 즉 재정준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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