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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의정갈등, 결국 피해자는 국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7 20:01

수정 2024.03.17 20:05

정명진 중기벤처부장
정명진 중기벤처부장
'0명 vs 2000명'

정부가 내세운 의대정원 증가 숫자인 2000명과 의료계가 원하는 0명의 간격이 한 달이 넘는 기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의정 양측은 이제는 의대정원 숫자보다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의정 갈등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추진 당시, 의료계는 전공의부터 동네의원까지 대규모 파업에 돌입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때 정부는 '의대정원 10% 감축'과 수가 인상 등으로 양보하면서 갈등의 막을 내렸다.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때도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선언한 후 전공의들은 집단휴진에 들어갔고,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하고, 의대 교수들의 사직선언이 나왔다.
결국 정부는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마무리됐다.

윤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의대정원 증원 1년 유예를 하고 대화에 나서자고 해도 2000명 증원은 계획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국민들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본인이나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 중증질환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겠다고 한 것은 필수의료 붕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수의료가 왜 붕괴되고 있을까. 미용의료시장 확대도 이유 중 하나다. 최근에는 '외모가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MZ세대가 늘어나면서 피부·성형 등 미용의료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보톡스가 국내 제약사에서 생산됨에 따라 시술가격이 떨어졌고, 국산 레이저기기들이 생산되면서 시술비가 떨어진 원인도 있다.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술이 된 것이다. 미용의료를 하게 되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의대를 갓 졸업한 일반의(GP)를 봉직의로 고용, 박리다매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도 10년 이상 된 직장인과 맞먹는다.

하지만 필수의료를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문의 과정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1년, 전공의 3~4년 등 총 4~5년을 더 거쳐야 한다. 게다가 전공의의 근무시간은 주당 80시간이다. 일반 직장인이 주당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노동강도다. 이에 대한 보상도 작다. 당연히 전공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의대정원 확대'다. 의사를 대폭 늘려 놓으면 낙수효과로 의사 없다고 하는 곳에 누구든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개원가 의사들이 늘어나면 레드오션이 되므로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다시 필수의료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현재 정작 의정 협상테이블에 나선 의사들은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들이 아니다. 이들은 의대정원을 늘리면 그만큼 의료시장에 의사 수가 늘어나므로 0명에서 물러설 수 없다.

하지만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들은 의대정원 확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숫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또 필수의료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수가를 적절하게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필수의료가 부족한 지역에 근무했을 때 그에 대한 보상이나 근무시간이 아닌 야간에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야간수가를 늘려준다거나 4~5년이 소요되면서 면허를 취득한 해당 과를 진료했을 때 전문의에 대한 수가를 차등해서 올려주길 원한다.


실제 힘든 일을 하는데 보상이 그만큼 되지 않고 쉬운 일을 하는 사람보다 보상이 적은데 의무감으로만 필수의료과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기 힘들다.

이번 의대정원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다시 한번 진지한 의정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했던가. 의정, 그들만의 싸움에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픈 국민이다.

pompo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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