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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논란의 李대사 귀국, 신속 조사로 흑백 가려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1 18:10

수정 2024.03.21 18:10

회의 참석차라지만 수습 목적인 듯
조사 진행 안되면 모종의 결단 필요
'도피성 출국'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 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지난 10일 호주대사로 부임한 이 대사는 지난해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조사에 외압을 행사했단 의혹을 받고 정치권으로부터 '수사 회피'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공동취재) 사진=뉴스1
'도피성 출국'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 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지난 10일 호주대사로 부임한 이 대사는 지난해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조사에 외압을 행사했단 의혹을 받고 정치권으로부터 '수사 회피'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공동취재) 사진=뉴스1
총선 정국에서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귀국했다. 다음주 열리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대사의 귀국에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여당 일각의 사퇴요구는 철회되지 않고 있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해병대 수사단이 채모 상병 순직사건 책임자를 수사할 때 외압을 행사하고 경찰에 이첩된 수사기록을 회수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고발됐었다. 정부가 이 대사를 임명한 뒤 이 사건과 관련해 내려진 출국금지를 풀고 출국시켜 논란이 된 것은 국민이 다 아는 내용이다.

피의자 신분이었고 더욱이 출국금지 상태였던 그를 대사로 임명해 내보낸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적도 그런 맥락이다. 무엇보다 여당 입장에서 문제는 이 대사 임명 이후 여론이 나빠져 선거에 큰 악재가 되고 있는 점이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절차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사퇴요구를 일축하고 있지만,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갈수록 떨어지는 당 지지율을 바라보는 여당 지도부와 후보들은 애가 탄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여당 후보들의 열세가 두드러지고 있어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강도 높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룬다. 경남 양산을 후보인 김태호 의원은 즉시 사퇴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동조하는 의원이나 후보들도 많다.

대통령실은 출국금지는 기밀인데 어떻게 누설됐는지부터 따지고 싶겠지만, 부차적인 문제다. 임명 당시에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바로 임명을 취소했어야 했는데 실기한 감이 있다. 이 문제가 이 정도로 민심이반을 부를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 대사의 갑작스러운 귀국은 분명히 국내 상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다음달 말 1주일간 열리는 연례 재외공관장회의로 귀국할 것으로 여겨졌는데 전례 없는 방산협력 회의를 연 것은 이 대사를 조기 귀국시키려는 방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사가 자진사퇴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경질할 가능성이 없는 이상 이 대사를 둘러싼 혼란을 마무리하려면 공수처가 이른 시일 안에 소환해 조사하는 게 최선이다. 문제는 공수처의 의지다. 더 이상 이 대사 조사를 질질 끌지 말고 즉각 한 달 남짓한 이 대사의 국내 체류기간 중 몇 번이라도 피의자 조사를 해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는 국민의 요구이기도 하다.

여당의 지상 과제는 이 대사의 결백이나 무혐의가 아니라 현재로서는 선거 승리다. 선거에서 져 현 국회 구성과 비슷한 여소야대가 되면 국정운영은 차질을 빚을 게 뻔하다. 각종 개혁작업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거의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 남았지만, 조기 레임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의석을 차지할지 섣부르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는 제1당이 되기 어렵다. 공수처에 맡기기 이전에 윤 대통령이나 이 대사 자신이 뭔가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속 타는 후보들이나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국정의 앞날을 고려한다면 호주와의 관계나 국가적 체면은 그다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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