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주주행동주의의 빛과 그늘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4 19:12

수정 2024.03.24 19:12

윤경현 증권부장
윤경현 증권부장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다. 과거에는 주로 배당금이나 주가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리는 모습이었지만 최근에는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려는 시도가 크게 늘고 있다.

행동주의는 지난 2000년대 초 국내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주로 외국계 투자자(단기에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헤지펀드)들이 '선수'로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버린자산운용이다. 소버린은 2003년 분식회계 등으로 SK㈜ 주가가 급락하자 15% 가까운 지분을 확보하고, 최대주주에 올라 경영권에 욕심을 냈다.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기존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소버린의 경영권 개입 시도는 불발로 끝났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SK㈜ 주가는 급등했다. 결국 소버린은 2005년 주식 전량을 팔아치우고 8000억원 넘는 차익을 챙겨서 떠났다.

'소버린 사태'는 국내 기업들이 지배구조개선 필요성에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그 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 대신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각인됐다. 이들이 아직도 '기업사냥꾼' '투기자본'이라는 이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의 '원조'는 2005년에 나온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다. 당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이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고문으로 참여, 일명 '장하성 펀드'로 불렸다. 저평가된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비주력자산 매각과 배당 확대 요구 등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했다. 비록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무르익지 않은 데다 해당 기업들의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번번이 실패했으나 자본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온 것은 분명하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하면서다. '강성부 펀드(KCGI)'가 한진칼 지분 매입에 나서면서 행동주의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긍정적 측면에서는 행동주의를 통해 기업가치가 오르면 결과적으로 모든 주주가 혜택을 보게 된다. 특히 대주주를 견제할 장치가 사실상 없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가 활성화되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고, 이는 곧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행동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작지 않다. 단기차익을 목적으로 무리하게 배당 확대를 요구하거나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기업의 경영권과 성장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10대 행동주의 펀드가 2018∼2019년 경영개입에 성공한 67개 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고용이 위축되고, 수익성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3월 주주행동주의는 한층 확산된 모습이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키로 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와 슈퍼개미를 비롯해 일반주주들도 힘을 모아 주주제안을 내놓고 있다. 현행 상법상 의결권 있는 지분을 3% 이상 확보하거나 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한 경우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의 연대를 지원하는 커뮤니티와 앱도 여럿이다.

(기업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행동주의를 탄생시킨 것은 기업 자신들이다. 그간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이익에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주주환원정책을 다시,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주주들 역시 기업의 성장 및 지속 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주주환원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밸류업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도 가능할 것이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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