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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 비상업적 소재로 대중성 잡았다[김덕희의 온스테이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5 18:24

수정 2024.03.25 18:24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공연예술의 각 장르가 담아내는 주제의 깊이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제적인 차원에서 연극이 담을 수 있는 깊이와 뮤지컬이 담을 수 있는 깊이가 다르며 무용, 발레, 오페라 역시 각 장르의 특징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특히 뮤지컬은 대중성과 상업성의 특징 때문에 소재와 주제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주제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뮤지컬은 진화하고 있다. 규모와 함께 질적인 성장을 하면서 소재와 주제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공연되는 뮤지컬 라인업을 둘러보면 고전 명작 뮤지컬에서부터 소극장 뮤지컬까지 폭넓고 다양하다.
9·11테러를 소재로 만든 '컴 프롬 어웨이', 소록도 이야기를 다룬 '섬: 1933~2019',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동네', 경계성 인격장애를 다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등 소위 대중적이지 않아 보이는 작품들도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 다섯번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넥스트 투 노멀'은 2008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정신병에 걸린 엄마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고 리얼하게 다룬 작품으로, 그 작품성이 인정돼 2009년 토니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몇 안되는 뮤지컬 작품 중 하나다.

착한 남편, 매력적인 아내 그리고 재능 있는 딸. 굿맨 가족은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가정이다. 하지만 엄마 다이애나는 오랜 기간 조울증과 조현병을 앓고 있다. 남편인 댄은 긍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보지만 나아지지 않는 아내의 병 때문에 절망적이다. 딸 나탈리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엄마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해 방황하게 된다. 또 아들 게이브는 실제로는 생후 8개월 만에 죽었지만 엄마에게 완벽한 아들로 나타나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

공사장의 비계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집은 정상적이지 않은 굿맨 가족을 상징한다. 3층 무대는 다양하게 변화되며, 배경 컬러를 통해 인물들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낸다. 2·3층의 사이드에 연주자를 노출한 콘셉트는 마치 콘서트 같은 느낌을 주며, 실제로도 거의 성스루(sung-through)에 가까울 정도로 대사보다는 노래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넥스트 투 노멀'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이렇게까지 리얼해도 되나 생각할 정도로 정신병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는 점이다. 작품 개발 단계에서 10여년에 걸쳐 실제 환자들과 의사들의 자문을 구해 완성했다고 한다.
대개 작품들이 희망을 향해 엔딩을 구성한다면 이 작품은 다소 충격적인 결정과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들로 실제 조울증 환자들이 겪어야하는 과정들을 여과없이 전달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방식으로 뮤지컬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있다.
이런 소재, 이런 결말이어도 대본과 음악의 완성도 그리고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있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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