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가까워지기 어려운 나라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5 18:34

수정 2024.03.25 18:34

김기석 국제부장·경제부문장
김기석 국제부장·경제부문장
오타니 쇼헤이. 최근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인이다. 오타니가 방한한 날 공항에는 수백명의 환영인파가 몰렸고 한국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개막전에는 오타니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많이 보였다. 오타니뿐만이 아니다. 방한길에 공개한 부인 다나카 마미코에 대한 관심도 컸다. 다나카씨의 성품, 검소함 등이 큰 관심을 받은 것이다. 가히 신드롬급 인기다.


오타니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애정은 해외에서도 특이하게 보일 정도다. 영국 가디언은 '오타니 쇼헤이, 한국인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일본 야구스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인기 비결은 우선 실력이다. 투자와 타자를 겸업하는 일명 야구계 '이도류(二刀流)'로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은 오타니 선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는 물론 타자로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을 기반으로 지난 연말 LA다저스와 계약기간 10년, 총액 7억달러(약 9293억원)의 초대형 FA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인성도 좋다. 야구 슈퍼스타가 된 후에도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고 야구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 포착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실력과 인성이 전부는 아니다. 스즈키 이치로 선수도 실력과 인성을 겸비했지만 '30년간 일본은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발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반감을 산 바 있다.

오타니가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끈 비결은 한국에 대한 애정과 배려다. 이전에도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라고 표현한 오타니는 최근 공개한 SNS에서는 태극기와 '기다려지다'라는 한글 문구를 올린 것. 충격이었다. 우리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도 좋지는 않을텐데.

최근 해빙되는 한일관계를 보면서 일본과 함께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깝고도 먼나라가 아니라 가까워질 수 있는 나라.

실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양국 관계는 빠르게 개선됐다. 일본 신문통신조사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호감이 느껴진다'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44%로 조사됐다. 지난 2015년 이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수치이기는 하지만 한일 양국의 민간 연구소인 동아시아연구원(EAI)과 '겐론NPO'(言論 NPO)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일본인 가운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다'거나 '대체로 좋다'고 답한 응답자는 37.4%로 조사됐다. 1년 전 조사치(30.4%)보다 7.0%p 상승했다. 이 조사는 두 연구소가 2013년부터 연례적으로 벌여온 조사에서 최고치를 기록한 2016년의 29.1%보다 높다.

양국 모두 호감을 갖고 있는 비율이 절반을 밑돌고는 있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발간 예정인 외교청서 원안에 우리나라에 대해 '파트너로서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평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외교청서에서 내렸던 '중요한 이웃나라' 평가에서 한 단계 올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일본의 역사왜곡이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내년부터 일본 중학생들이 사용할 사회 교과서 대부분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종군 위안부' 대신 '위안부'로 적거나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병기했다.

우리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하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내용을 수정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역사왜곡으로 한일관계는 다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친해질 만했는데 다시 먼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거 같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 가까워질 수 없는 나라가 될 거 같다. 일본 정부가 오타니의 인성과 배려를 배우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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