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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광고, 의료법 vs 의료심의 괴리 크다

강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6 12:01

수정 2024.03.26 12:01

"국민 중심 심의로 의료 질 높이고 비용 낮춰야"
의료광고, 의료법 vs 의료심의 괴리 크다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신산업 기업애로 규제개선방안'에 의료광고를 포함시켰지만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 2022년 12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27회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논의된 '신산업 기업애로 규제개선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중 보건의료 분야의 개선안 중 하나는 '의료광고 자율심의 기준 명확화'로 소관부처는 보건복지부다.

구제개선방안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상 의료광고에서 비급여 가격 공지, 일정 조건을 충족한 치료 전·후 사진 비교 등을 허용하고 있으나 의료광고 자율심의기준은 이를 금지하고 있어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보건복지부는 그간의 판례, 정부 유권해석 등이 반영된 적정 자율심의 기준의 운영 요청 등 법적 근거 마련을 지시받았다.

하지만 개선안이 발표되고 현재까지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소비자들의 알권리 침해와 정보 비대칭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법과 의료심의 평가기준 정반대

이는 의료법과 의료심의 평가기준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의료법은 의료 광고의 제작 기준을 제시하고 의료 심의는 제작된 의료 광고의 노출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먼저 의료법을 살펴보면 의료 광고에 대해 '네거티브 리스팅(Negative Listing)' 방식의 기준을 적용한다. 네거티브 리스팅은 원래 무역산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수입 금지 품목을 정하고 나머지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 자유화를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의료법은 의료 광고 시 해서는 안되는 표현을 명시하고 그 외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준다. 이는 정보 비대칭이 심한 의료 시장에 국민의 알권리를 강화하고 특히 비급여 의료 시장에서 의료비용, 기술 등을 통한 병원간 경쟁을 자극해 의료 서비스의 소비자들에게 그 혜택 돌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의료 심의 기준은 '포지티브 리스팅(Positive Listing)' 방식으로 의료 광고를 평가한다. 이는 네거티브 리스팅 방식과 반대 개념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을 정하고 그 외의 모든 표현에 대해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과대, 허위 광고를 원칙적으로 차단할 수 있고 심의기관이 빠르게 효율적으로 심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의료법과 의료 광고 심의의 간극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려는 정부와 과대, 허위 광고를 막기 위한 심의 기관의 시각 차이 보다는 병원 산업의 구조에 기인한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도심 중심권 병원, 광고 필요없어

국내 병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형 병의원은 인구가 집중되는 번화가나 대단지 아파트 등에 뭉쳐서 위치하고 고객들의 자연 유입을 기다리는 '클러스터(Cluster)' 방식의 사업구조를 택한다.

기본적으로 환자들은 집이나 직장과 가까운 지역을 중심으로 검색을 통해 병원에 방문하기 때문이다. 이런 병원들은 자신의 강점을 알리기 위해 광고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 특히나 병원들은 암묵적으로 모두 '무(無)광고'를 유지하면 환자와 의사의 정보 불균형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진료비 경쟁, 새로운 기술 경쟁 없이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들이 이익 집단이자 의료 광고 심의 기구인 협회를 통해 경쟁을 유도하는 광고 문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향으로 심의를 유도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의료법과 의료 광고 심의 기준의 간극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의사들이 소득과 관련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비급여 진료비 안내, 새로운 치료 방법 안내 등을 광고를 통해 노출하는 것은 의료법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심의 기관에서는 심의가 거절되는 주요 사례다.

국민도 비급여 비용 비교해야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정보 접근성이 제한되면서 정보 비대칭이 심화되고 결국 의료비 과다 지출, 원하지 않는 치료 선택 등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비급여 의료 시장에서의 문제는 크다.

예를 들어 치과 시장의 대표적인 비급여 진료인 임플란트의 경우 클러스터 방식을 탈피한 신흥 치과의 경우 3D-CT, 수면 임플란트 등의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도 100만원 내외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에 반해 기존 클러스터 방식을 고수하는 치과들은 150만원에서 300만원 이상의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신흥 치과들은 본인들의 강점을 강조하는 광고의 심의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환자들은 방문하고자 하는 치과가 어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진료 비용은 얼마인지 등에 대해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더 많은 정보 제공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강화하고 비급여 진료비 정상화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작년에 시행한 비급여 진료내역 보고 의무화를 올해부터는 전체 병의원으로 확대한다.

이를 통해 국내 모든 병의원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되는 비급여 항목별 단가, 빈도, 상병명, 주수술명 등을 국민건겅보험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정부는 진료 투명성 제고 및 혼합 진료 금지 등을 통해 무분별한 보험비 낭비를 막기 위해 지난 2월 발표한 필수의료 패키지에 비급여 관리 강화를 포함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의료 광고 심의는 환자와 의사간 정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의사가 전문직 최상위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직업이 되는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라며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소비자 중심의 심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 추정치는 2014년 11조2000억 원에서 2021년 17조3000억 원으로 7년 사이 약 54% 증가할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또한 국세청에 따르면 의사들의 평균 소득은 2021년 기준 2억 6900만원으로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보다 높은 일본(1억1300만원)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많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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