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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의 춤과 함께] 무용수 슬럼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8 18:06

수정 2024.03.28 18:06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불행이 와도 인정하는 것
괜찮다, 이겨낼 힘 있으니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근래 '닥터 슬럼프'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시청을 했다. 남녀 두 의사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슬럼프를 겪고 마지막에는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보면서 무용수로서의 슬럼프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많은 무용수들이 부상으로 인해 춤을 추지 못할 때 슬럼프를 겪게 되는 것 같다.

16세기의 궁중무용이 점차 발전하여 틀을 갖추며 귀족들의 예술이었던 발레는 루이 14세 이후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다. 어찌보면 루이 14세가 최초의 남성 무용수라 말할수 있는데 엄청난 훈련을 통해 자신이 직접 발레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춤을 췄다.
이후 전문 무용수들이 생겨나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발레가 만들어졌다. 과학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를 통해 무용수들은 더욱 어렵고 화려한 테크닉을 위해 노력해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이 매번 바뀌듯이 발레도 테크닉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부상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발레 무용수의 종아리 근지구력은 축구선수보다 강하다고 한다. 무용수는 엄청난 근력과 지구력, 거기에 유연성까지 갖추어야 하며 부상이 많은 부분은 주로 발목, 무릎, 허리이며 남자 무용수들은 어깨도 많이 부상을 입는다. 예전에는 부상을 당해 수술을 하게 되면 복귀가 불가능할 거라는 걱정이 많았지만 스포츠 의학과 재활치료의 발달로 많은 무용수들이 수술 후 예전보다 빠른 복귀가 가능해졌다.

나 같은 경우 꽤나 많은 부상들이 있었는데 2002년 국립발레단을 떠나 네덜란드국립발레단으로 옮긴 후 5개월 만에 큰 부상을 당했었다. 유명한 쿠바 무용수인 '카를로스 아코스타'와 쿠바 발레 페스티벌에서 돈키호테를 출 예정이었는데 혼자 연습하다 넘어지면서 발목을 아주 심하게 다치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처음엔 주목도 받고 좋은 역할의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거의 4개월을 쉬게 되니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발목 부상이 호전되지 않은 채 춤을 추다 보니 더욱 악화되어 결국 1년 뒤 발목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완벽한 컨디션을 찾을지 걱정이 많았고 수술과 재활기간 동안 살도 찌고 공연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발목수술 후에는 완전한 내 몸 상태와 컨디션, 테크닉을 찾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으며 그 사이 '발레를 그만두어야하나'라는 우울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슬럼프에 빠졌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생각 없이 쉽게 되었던 동작들이 예전 같지 않은 것에 많은 좌절감을 느꼈었다. 차라리 무용을 처음 배우는 게 나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시 무용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해나가자 안 되었던 동작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완성되면서 점점 자신감을 찾아 나갔다.

다시 춤을 추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길었기에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서 나의 몸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인생을 배우고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부상을 입는 많은 학생들을 접하게 될 때면 나도 부상 때문에 맘 고생을 많이 했었기에 그들의 힘든 마음이 어떨지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만약 부상 없이 승승장구했다면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했을까? 사실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을 때 무용수가 겪어야 할 좌절과 고통은 육체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게 더 크다.

인생의 길을 따라가면서 누구나 고속도로를 타길 원하지만 때로는 비탈길의 황폐한 길로 빠져들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인생의 예방주사라 생각하고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무용수에게 있어 부상과 슬럼프는 힘든 길을 잠시 쉬어가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받아들이면 더 좋은 인생이 그려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닥터 슬럼프'에서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마쳐보려 한다. 행복이란 불행도 인정하는 거. 나는 또 불행해질 수 있지만 괜찮다.
다시 찾아오더라도 나에겐 이겨낼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 행복이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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