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양형기준 높인 첨단기술 유출 범죄, 국력 누출의 '고리' 끊을 수 있을까?[법조인사이트]

최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31 15:28

수정 2024.03.31 15:28

양형 기준 상향..최대 18년 
입증 쉽지 않아...'솜방망이' 현실 
사법 만으로 한계, 국민적 인식 필요


산업기술 유출 건수 추이
기간 건수
2019 376
2020 405
2021 378
2022 348
2023 379
(대검찰청)

[파이낸셜뉴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 박진성)는 지난해 6월 삼성전자 전 임원 출신이자 현 해외업체 A사 대표인 B씨를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A사 전 팀장과 직원 6명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B씨는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공장 설계도면과 공정 배치도를 부정 취득 및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중국에 삼성전자 공장 복제본을 건설할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이들이 끼친 피해 금액을 최소 3000억원대로 추산했다.

#. 수원지검 평택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이지연)은 C씨 등 10명을 업무상 배임, 산업기술 보호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반도체 공정 진공펌프 제조기술을 보유한 D사의 전·현직 직원들이었다. 이들중 구속상태로 기소된 전직 직원은 중국 현지에 복제공장 설립을 염두에 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중국 수출을 위해 보관하던 진공펌프 부품 47종 1만여개와 유출된 기술자료를 회수했다.

진화하는 기술유출 범죄에 법원도 칼을 빼들었다. 과거의 기술유출 범죄가 설계도 등 단순 정보 취득에 그쳤다면 최근 기술 유출은 중국 등 타지에 '복사 공장'을 추진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최근 지식재산·기술 침해 범죄에 대해 최대 징역 18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하면서 국가 핵심기술 유출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양형 기준 상향..최대 18년
3월 31일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매년 평균 300건을 웃돌고 있다. 지난 2019년 376건이었던 산업기술유출 사건은 2020년 405건까지 치솟았고, 2021년 378건, 2022년 348건, 지난해 379건이었다. 이는 경찰이 불송치사거나 수사 중지한 사건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이 사건을 기소하는 비중 또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9년 산업기술 유출사건 기소비율은 전체 사건중 9.3%(35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검찰 기소율은 17.1%(65건)였다.

기술유출 수법은 갈수록 진화하는 양상이다. 휴대용 저장장치(USB)에 담아가는 것은 고전적이다. 국내에 기업을 설립한 뒤 기술 인력을 고용해 기술을 취득하거나 아예 국내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법도 사용한다.최근 몇년간 검찰 기소 사례를 보면 단순 기술 유출이 아니라 '복사 공장'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이같은 기술 유출이 성공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장기적 피해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지난달 26일 최종 의결한 양형기준 역시 엄벌 기조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국가가 정한 핵심기술(국가핵심기술)을 국외로 빼돌렸을 경우 법원은 최대 징역 18년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일반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했을 경우는 최대 권고형량이 9년에 그쳤으나 최대 15년까지 늘어났다.

양형위도 “기술 침해 범죄에 대한 엄정한 양형을 바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해 유사 범죄군의 양형 기준보다 규범적으로 상향된 형량 범위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입증 쉽지 않아...'솜방망이' 현실
그러나 양형 기준 상향 조정이 기술유출 범죄를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유출 사범을 적발했다고 해도 법원에서 뒤집힌 사례가 흔하기 때문이다. 우선 양형 기준을 적용하려면 피해액인 나와야 하지만, 이를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 유출된 곳이 해외일 경우 그 국가에서 협조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해당 기술이 실제 타국에서 경쟁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것도 입증해야 한다. 만약 타국 업체가 “기존부터 있던 기술”이라고 우길 경우 이를 반박할 근거 역시 우리 사정당국의 몫이다.

USB나 도면 등 뚜렷한 증거물이 아니라, 인력의 머릿속에 있던 기술이라면 ‘유출’ 자체를 어떻게 증명해 유죄를 끌어낼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로인해 최대 형량을 높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긍정적 양형인자를 모두 반영하고, 증거로 쓸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면 실제 적용 가능한 양형의 구간은 훨씬 좁아질 수밖에 없다.

대검찰청이 조사한 연간 기술유출 범죄 처리 현황에 따르면 재판에 넘겨진 기술유출 범죄가 무죄판결을 받는 비율(2014~2017년 기준)도 15~20%가량으로, 일반 형사사건 비중이 1% 미만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높다. 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징역 1년을 선고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첨단기술 유출이 가장 많은 중국의 경우 유출범들이 현지에서 철저한 어둠의 영역에 있는 등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 돕는 정부 기관 관계자는 “유출범들은 해외에서 교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단절된 생활을 한다. 신분이 노출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영어식 이름을 쓰고 가족과 연락도 1~2년 끊고 지낸다”고 전했다.

이렇게 고생해도 유출범 입장에선 수년만 고생할 경우 평생 받을 수 있는 연봉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도 제재할 수단을 찾아봐야 하는 부분이다. 유출범 낙인이 찍히지 않으면 한국에서 다시 직업을 얻을 수도 있다.

사법 만으로 한계, 국민적 인식 필요

다만 사법 외 다른 분야에서도 첨단기술 유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점진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는 첨단기술 유출범 처벌 강화 내용을 담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올해 추진할 계획이다. 벌금 상한을 15억원 이하에서 65억원 이하로 늘리며, 브로커도 처벌 가능토록 바꾼다. 기술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 역시 현행 3배에서 5배로 확대한다.

산업통상자원부 또한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법이 정한 ‘전문인력’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개선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전문인력과 비밀 유출 방지 및 해외 동종 업종 이직 제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아울러 기업이 전문인력의 출입국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것도 가능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 적발시 몰수나 추징 확대 등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신속한 결정을 위해 일본, 대만처럼 기술 유출 사건만 다루는 전문 법원이나 전담 재판부 신설도 검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wschoi@fnnews.com 최우석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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