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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의대 증원과 이공계 육성책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1 18:20

수정 2024.04.01 18:20

김경수 전국부장
김경수 전국부장
27년 만에 단행된 의대정원 확대의 후폭풍이 교육·산업계에 몰아치고 있다. 의대 증원 뒤 남겨진 과제들을 해결해야 할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의대 신규 정원 2000명 확대로 인해 우리나라 입시업계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2000명 의대정원 확대로 인해 명문대 이공계 저학년뿐만 아니라 고학년까지 의대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또 다른 대학교에서 편입학 등을 통해 연쇄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전조현상은 이미 올해부터 나타났다.
2024학년도 대입 정시 합격자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명문대 첨단학과에서도 합격생이 무더기로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 대학의 의약학계열에 중복 합격한 뒤 의대나 약대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졸업 후 삼성전자 취업이 보장되는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경우 합격자 25명 중 23명(92%)이 등록을 포기했다. 현대차 계약학과인 고려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는 미등록률이 지난해 36.4%에서 올해 65%로 2배가량이 됐다. 미등록 합격자 대부분은 중복 합격한 의약학계열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공계 두뇌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다. 2000명에 달하는 신규 의대정원은 현재 서울대에 재학 중인 이공계생의 절반 가까이가 의대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텄다는 분석도 있다.

2000명이 증원되면 전국 의대 입학정원은 기존 정원까지 합쳐서 총 5058명이 된다. 이는 2024학년도 입시 기준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자연계열 학과 모집인원 총합인 5443명의 93%에 달하는 인원이다. 또한 새로 늘어난 의대정원 2000명은 서울대 자연계열 입학생 수(1844명)를 넘어서고,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신입생 규모(1700여명)도 넘는다.

최근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삭감되면서 국내 석·박사급 고급 브레인들이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려온다. 이런 와중에 의대 증원을 계기로 뒤늦게 진로를 바꾸려는 이공계 출신 직장인과 연구원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수출산업의 기둥으로 대접받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산업 등은 모두 고급 이공계 인재 육성 덕분이었다. 일각에선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생명공학과 연계된 의과학산업 분야를 육성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의대 신설이 논의 중인 KAIST나 포스텍 등이 연구 중심인 의과학대학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공계 유출뿐만 아니라 의대들도 해결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증원된 2000명의 의대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할 의대 교수진과 각종 시설을 먼저 갖춰야 한다. 그러지 못한 의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까다로운 평가에서 불합격돼 의대를 졸업하고도 의사자격증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의대생 증가로 수년 내 의료실습용 시신인 '카데바'조차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잠재워야 한다.

지방 국립대들은 이번 배정을 통해 기존보다 2배 가까이 많은 200명대의 정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서울 소재 의대들은 단 한 명도 배정을 받지 못했다.

정원이 급증한 지방 의대 졸업생들을 지역에 정착시킬 묘책도 내놔야 한다. 일본처럼 학비지원을 한 뒤에 지방에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지역의사제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2000명의 의대 증원은 향후 5년간 계속 유지돼 1만명에 가까운 신규 정원 의대생이 배출된다. 기존 정원까지 합치면 2만5000명이다.
한번 증원한 대학의 정원은 폐교가 되지 않는 한 사실상 줄이기 쉽지 않다. 이를 감안하면 10년 뒤에는 5만명까지 늘 수도 있다.
10년 뒤를 바라보는 정부의 촘촘한 의료 및 이공계 공동 육성 대책이 함께 나오길 기대해본다.

rai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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