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테헤란로] 올드머니룩이 오래 유행하길 바라는 이유

박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1 18:21

수정 2024.04.01 18:21

박지영 생활경제부 차장
박지영 생활경제부 차장
정말 신고 싶은 신발이 생겨서 처음으로 명품 구두를 구입했을 때의 일이다. 큰맘 먹고 비싸게 산 구두니 애지중지했다. 비 오는 날은 절대 신지 않고, 오래 걸어야 하는 날에도 신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시고 살았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밑창이 너무 빨리 닳는 느낌이 들어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명품 구두는 밑창을 덧대서 신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명품 구두 중에는 홍창이 많은데 가볍고 착화감이 좋지만 마모되기 쉽고 습기에 약해서 보통은 창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선집에 맡긴 후 이상하게 착화감이 예전과 달랐다. 발에 착 감기던 느낌은 사라지고, 미묘하지만 뭔가 다른 구두가 된 느낌이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홍창구두는 애초에 많이 안 걷고, 아스팔트가 아니라 카펫 같은 곳을 걷는 사람들이나 신는 신발"이라고 말해줬다. 그제서야 이 신발이 뚜벅이인 나의 라이프스타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명품 하나쯤은 당연히 있는 세상이 됐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로 미국(280달러), 일본(210달러)에 앞서며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경기가 안 좋다고 라면 값과 사과 값 등으로 서민이 고통받는다고는 하지만 명품 소비는 꾸준하다. 자산이나 소득이 늘어서 명품 구입이 쉬워졌다면 더없이 좋은 경제현상이겠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제 명품은 더 이상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아이템' 수준이 됐다.

주변에서 명품을 구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구매동기는 "중요한 자리에 한개쯤은 필요해"다. 결혼식장이 대표적이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친구들 앞에 명품가방을 들고 나가야만 요즘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얼마 전 결혼식장에 들고 갔던 명품가방을 다시 드레스룸에 넣으며 문득 작년에 몇 번이나 들었는지 생각해봤다. 딱 한 번이었다. 자꾸만 본전 생각이 났다. 딸에게 물려줘야지 생각까지 하는 걸 보니 역시 나에겐 과분한 소비가 맞았다.

최근 식사 자리에서는 "명품을 드는 것은 죄악"이라는 말을 들었다. 상대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모두들 아! 하고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요즘은 티 나지 않는 명품인 '올드머니룩'이 유행이라고 한다. 티 내야 하는 명품이 티 나지 않아야 한다니 모순이긴 하지만 부디 그 유행이 오래가길 바란다.
그사이 더 가치 있는 소비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aber@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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