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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관계와 대러제재 : 만만한 상대가 되서는 안 되는 이유[fn기고]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4 06:00

수정 2024.04.04 06:00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국제 사회에서 만만한 상대로 보이면 외교력 제고 요원, 국가안보도 위태로워  -한 국가의 외교는 때로 리스크 감수하고 전략적 명확성 기조로 당당하게 펼쳐야  -과거 어정쩡한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요한 결정 유보 행태 조장하는 부작용 낳아  -현 정부, 외교안보 철학 기조 혁신·인-태전략과 GPS 외교로 선진강국으로 인식전환  -담대한 국제외교는 규칙 무력화하는 국가에 응분의 대가 받게 하는 각인 정책 실행  -과거 韓의 투트랙 외교, 유엔서 러시아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거부권으로 무시당해  -우리 정부, 상대국에 까다로운 상대로 인식시키는 대(對)러시아 독자제재 꺼내 들어  -북러 불법거래의 도전, 유엔 안보리 신냉전의 볼모 상황서 정책의 불가피성 주목해야  -국가책무, 일관성 있는 추진 '담대한 외교' 대러 독자제재...양자관계 시험대 될 전망  -러시아, 한국의 제제에 불만 표시할 개연성 커...리스크 감수·관리 치밀하게 대처해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한 국가가 상대국에게 만만한 상대로 보이면 외교력 제고가 요원할 뿐 아니라 국가안보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만만한 상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상대방이 듣기 싫더라도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때로는 직접적인 처벌도 단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행태가 국가이익을 저해하고 안보를 저해하는데도 당근만을 제시할 경우 그야말로 만만한 상대를 넘어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과거 정부의 대북 저자세 외교나 북한 올인외교에 대한 비판도 한국이 이러한 푸대접이나 받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우려와 무관치 않다. 나아가 만만한 상대로 보이게 된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지나친 조심스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철학적 기조인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은 이러한 문제인식에 주목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처방의 일환으로 채택되었다.

과거 ‘전략적 모호성’은 국가가 나서서 당당히 결정해야 할 사안에 의연하지 못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지속하며 중요한 결정을 유보하는 행태를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런 문제해결을 위해 현 정부는 ‘전략적 명확성’으로 외교안보 철학 기조 혁신에 나섰다. 이 철학이 현 정부 정책 곳곳에 녹아내리며 한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글로벌 중추국가(GPS) 외교가 주목을 받는 가운데 한국이 ‘선진강국’으로 인식되는 등 순풍을 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에서 그 어느 국가도 더 이상 한국을 만만한 상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국이 한국을 까다로운 상대로 인식하게 하는 ‘담대한 외교’는 국제 규칙을 무력화하는 국가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받게 된다고 각인시키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4월 2일 정부의 대러 독자제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무기거래, 노동자 활용 등에서 협력을 해서는 안 되는 북한과 고강도 협력에 나서고 있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국 정부는 채찍을 꺼내어 들었다. 불법거래의 대상 물자를 운송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 선박 2척을 제재대상이 포함하였고, 노동자 송출 관련 책임을 물어 기관 2곳과 개인 2명을 명단에 올렸다.

지금까지 한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포함한 국제규칙을 위반하는 러시아를 상대로 규탄을 이어가면서도 동시에 양자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투트랙 외교를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한국의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에 직접적인 위협요소인 불법 북러 군사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력화되면서 한국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외교적 일탈과 무시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한국 정부는 대러 독자제재를 꺼내어 들어 ‘담대한 외교’ 실천에 나섰다.

이처럼 한국을 까다로운 상대로 인식하게 하는 ‘담대한 외교’는 심리적 차원의 외교술로 그 효과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러 독자제재와 같은 ‘담대한 외교’가 창출하는 구체적인 정책조치의 불가피성도 주목해야 한다. 북러 불법거래으로 인해 가장 큰 도전에 놓인 국가는 한국이다. 북한은 불법거래로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재래식 무기를 현대화하며 나아가 노동자를 통한 외환벌이를 이어가는 가운데 정해진 룰을 파괴하고 전쟁을 운운하며 한국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칙파괴 행태를 단속해야 할 유엔 안보리는 신냉전 구도의 볼모로 잡혀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한국이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러시아의 이러한 일탈에 수수방관하는 것은 국익과 안보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정부의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대러 독자제재는 불가피한 카드이면서 동시에 국가책무를 ‘담대한 외교’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의 대러 독자제재는 양자관계 차원에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러시아는 자신의 일탈은 개의치 않고 한국의 채찍에만 불만을 표시할 개연성이 높다. 한국이 만만한 상대로 보이지 않기 위한 ‘담대한 외교’가 제대로 추진되려면 이 정도의 리스크 대두는 감수할 결기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리스크를 완화하거나 아니면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즉 리스크 감수도 필요하고 리스크 관리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따져서 치밀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투트랙 접근법을 잘 유지한다면 승수효과도 가능할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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