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국민 겁박하는 의사들… 더 큰 결단 필요하다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3 18:22

수정 2024.04.03 18:22

김관웅 생활경제부장 부국장
김관웅 생활경제부장 부국장
며칠 전 충북 보은에서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세살 아기가 응급처치로 소생 기미를 보였음에도 인근 대형병원들의 전원 거절로 3시간 만에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런 경우 살아날 가능성이 5%가량에 불과하다고 설명하지만 이 어린 생명은 "병상과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우리나라 지역의료 현실과 필수의료인력 부족이라는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재 우리나라 의사 수는 너무도 부족한 상황이다. 인구 1만명당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평균 37명인 데 비해 한국은 21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적은 숫자도 거의 모두가 서울 수도권에 몰려 있다.
한 해 배출되는 의사 수는 더 차이 난다. 영국 1만1000명, 독일 1만127명, 프랑스 1만명, 일본 9384명이다. 한국은 고작 3058명이다. 내년부터 2000명씩 증원해도 2024년이 돼야 겨우 5000명 선에 이른다. 지난 20년 동안 의대 증원에 번번이 실패했음에도 윤석열 정부가 증원에 나선 이유다.

현실이 이런데도 의료계는 "대학입학 증원은 안 된다. 오히려 감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단체는 점입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국회의원 20, 30석 정도는 좌우할 전략이 있다"며 자신들의 편을 들지 않는 정치인은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그는 또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2차관을 즉시 파면하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라"고까지 말했다. 자신들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국민들이 머리를 숙여 사죄하라는 것이다.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며 환자 곁을 떠난 젊은 의사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은 국민 모두가 다 안다. 그동안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켜준 데 대한 고마움에, 그래도 의료인의 양심을 규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믿었기 때문에 "경쟁은 싫고 돈을 더 벌고 싶은 거 아니냐"는 직접적인 비난을 참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이제 더 큰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해외 유명 의대 분교를 국내에 유치하고 의료서비스 개방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이는 의협이 주장하는 현재의 교육환경으로는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억지 주장에 대한 또 다른 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게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외국 유명대학교 분교를 유치해 자국의 교육수준을 높이고, 인접국의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 유명 의대 분교가 들어오게 되면 미국, 영국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 교류가 보다 쉬워지고, 이들을 통해 배출된 인력이 국내 의료시장에 자리잡게 되면 부족한 의사인력 확충에도 도움이 되는 등 장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 기회에 원격의료 허용과 의료시장 개방 등 의료산업 개편에도 나서야 한다. 원격의료 허용은 의사단체들이 강력 반대하고 있지만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에 대응, "집단행동 기간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결단만 있다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외 의료인력에 대한 국내 의사면허 부여도 고민해볼 만하다. 국내 의료계가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부족한 의사 수를 보충하는 데 작은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외국 유명 병원에 의료시장을 개방하는 방안도 장기적 안목에서 적극 검토해야 한다. 외국 유명 병원이 국내에 진출하게 되면 자연히 국내 병원들도 경쟁력 향상에 나설 수 있게 되고, 서비스의 질적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시대를 막론하고 도를 넘은 집단이기주의는 반드시 개혁을 불러왔다. 의사라는 직업도 국가의 교육시스템이 한 개인에게 이전된 결과물일 뿐이다.
개인은 그 자격을 국가와 국민에 의해 인정받은 것이지 본인이 혼자 모든 것을 이뤄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 작고한 한국의 지성 이어령 교수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내가 받은 것은 빛나는 선물이었고 이제 그 선물을 돌려주려 한다."

kw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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