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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의 기업가정신] 기술경영 선각자가 던지는 리더의 조건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3 18:22

수정 2024.04.03 18:22

별세한 趙 효성 명예회장
전문 지식으로 일류 견인
경쟁 이길 CEO 덕목 제시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6·25전쟁 이후 변변한 기계가 부족한 시절에도 경영의 선각자들은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다만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터득한 기술지식으로 큰 성과를 이뤘다.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해 가며 기술력을 키웠다. 그나마 전문 기술지식을 체계적으로 연마해 굴지의 그룹을 일군 경영인이 있긴 하다. 지난달 29일 별세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다.

일본 와세다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공학과 석사를 마친 뒤 대학교수를 준비 중이던 조 명예회장은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의 부름을 받고 효성에 몸을 담았다.
효성그룹 창립연도는 1966년인데 그가 효성 경영에 데뷔한 해이기도 하다. 조홍제 회장이 창업주이긴 하나 조 명예회장의 기술경영 DNA가 그룹 창업부터 녹아들었다고 볼 수 있다.

조 명예회장 조문 기간에 등장한 수식어는 '재계의 큰 별' 혹은 '재계 거목'이다. 굴지의 그룹을 일군 데다 재계를 이끄는 전국경제인연합회장까지 맡았으니 이런 표현이 붙을 만하다. 그러나 본인의 기술 전문성과 경영 스타일을 감안하면 '기술경영의 선각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일반적으로 그룹의 덩치를 키워 성공한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픈 욕망이 생길 법하다. 완성품 위주로 매출 사이즈를 늘리는 게 지름길이다.

조 명예회장은 결이 좀 달랐다. 창업 초기 경영자 가운데 공대 출신 엘리트라는 배경을 갖춘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꼼꼼하고 정밀한 기술경영주의를 견지한 조 명예회장이 효성의 색깔을 원천기술에 입각한 본질과 실용에 둔 이유를 알 만하다. 이 같은 조 명예회장의 스타일은 '경제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력에 있다'는 경영철학에서도 읽을 수 있다. 기술에 대한 집념은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효성의 히트작들은 온통 원천기술에 기반한 소재들이다.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 덕분에 효성은 독보적인 글로벌 1등 제품을 갖고 있다.

'섬유의 반도체'로 불리는 스판덱스 제조기술은 1990년대 초엔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만 보유했다. 조 명예회장이 '독자개발'을 결정하고 직접 연구개발을 지시한 결과 이 분야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타이어 보강재인 타이어코드 역시 효성그룹의 글로벌 1위 제품이다.

요즘 글로벌 경제전쟁의 화두는 둘도 아닌 딱 하나다. 기술이다. 인공지능(AI)이 경영 판도를 확 뒤집어놓으면서 기술경영은 대세론이 됐다. 기존 경영방식으론 시장 트렌드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오죽하면 '경영학은 죽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일까.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현대 경영에서 더욱 조명받는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왕성하게 펼쳐온 기술경영이 최근 영결식을 계기로 극찬받는 걸 보면 역주행 열풍이라고 부를 만하다.

기업의 존폐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위도 기술에 좌우되는 시대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공급망 혈투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통상 국가의 안정적 발전에 필수적인 요건을 '안보'라고 불렀다. 그런데 요즘은 '경제안보'라고 한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경제는 국가의 안위마저 위태롭게 한다는 얘기다. 현시대에서 경제는 기술경쟁력과 동일시되고 있다.

흔히 최고경영자가 경영감각만 갖추면 기업이 저절로 굴러간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기술패권 시대다. 과거처럼 개인의 '감'에 의존해 경영하다간 금세 좀비기업으로 전락한다.
C레벨에 기술전문가가 주류를 이루고, 기술지식을 갖춘 스타트업 창업가가 대박을 터트리는 세상이 됐다. 기술에 대한 이해력을 갖춘 리더가 도전과 혁신까지 장착하면 그야말로 무소불위다.
성공하는 기업의 리더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무한경쟁 시대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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