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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사관 급습' 에콰도르 단교… 이념에 쪼개진 중남미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7 18:51

수정 2024.04.07 18:51

前부통령 체포 빌미로 경찰 진입
외교시설 침범 금지 빈조약 위반
SNS에 대리대사 진압 영상 퍼져
멕시코 "국제재판소에 제소할것"
외교정책의 급격한 이념화 지적
5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 주에콰도르 멕시코 대사관에 진입을 시도 중인 에콰도르 경찰. AF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 주에콰도르 멕시코 대사관에 진입을 시도 중인 에콰도르 경찰. AFP연합뉴스
멕시코가 에콰도르와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에콰도르 경찰이 에콰도르 전 부통령을 체포하겠다며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멕시코 대사관을 급습한 뒤 단교를 선언했다. 멕시코는 이 문제를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다짐했다.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강경 보수파인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키토 주재 멕시코대사관에 숨어있는 호르헤 글라스 전 부통령을 체포할 것을 경찰에 명령했다.

좌파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르바도르 멕시코 대통령 행정부가 글라스 전 부통령의 망명을 허용한 뒤 경찰에 체포 명령을 내렸다. 글라스는 2013~2018년 에콰도르 부통령을 지냈지만 부패 혐의로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에콰도르 경찰은 5일 밤 중무장한 경찰들을 대사관 주변에 배치한 뒤 대사관을 급습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에콰도르 경찰 급습을 받은 뒤 로베르토 칸세코 멕시코 대리대사가 떠나는 경찰에 항의하는 모습이 보인다.

칸세코 대리대사는 사이렌을 울리며 대사관을 떠나는 에콰도르 경찰을 향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법이다"라고 외치자 경찰이 그를 넘어뜨려 땅바닥에 제압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칸세코 대리대사는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경찰이 나를 가격했고, 땅에 짓눌렀다. 그들(경찰)이 대사관에 진입하려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으려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마치 범죄자 다루듯 키토 주재 멕시코 대사관을 수색했다"고 비난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에콰도르가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고, 멕시코 주권도 침해했다"면서 에콰도르와 외교관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1961년에 체결된 빈조약에 따르면 대사관 등 외교시설은 침범할 수 없다. 외교시설 수장의 동의가 없는 한 주재국 정부요원들은 외교시설에 들어갈 수 없다. 이에 주재국 정부가 강제로 외교시설에 침입한 사례는 거의 없다. 독재정부에서도 상대국 외교시설을 침범한 사례는 없다.

에콰도르의 멕시코대사관 급습은 중남미내 이념적 갈등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워싱턴주재 멕시코 대사를 지낸 마르타 바르체나는 "라틴아메리카 전반의 외교정책이 급격하게 이념화하고 있다"면서 외교 설전이 결국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런 이례적인 사건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중남미에서 이같은 외교시설 무단 침입이 발생한 것은 지난 1981년 이후 33년만이다.
1980년에는 과테말라 수도인 과테말라시티에서 농민 무장단체가 스페인 대사관을 점거하고 과테말라 경찰이 진입해 무장농민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불이 나 37명이 숨졌다. 또 같은 해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도미니카공화국 대사관을 콜롬비아 게릴라단체 M-19가 습격해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대치한 적이 있다.
1981년에는 쿠바가 에콰도르 대사관을 급습해 대사관에 머물고 있던 쿠바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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