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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韓 증시 아틀라스' 국민연금의 역할

강구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8 18:07

수정 2024.04.08 18:07

강구귀 증권부 차장
강구귀 증권부 차장
국민연금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와 같다. 영향력과 필요성이 대체 불가능해서다. 짊어진 무게도 막대하다. 아틀라스는 제우스와 티탄의 싸움에서 티탄의 편을 들었다가 대지(가이아)의 서쪽 끝에 서서 지구의 하늘(우라노스)을 떠받드는 형벌을 받은 '거인' 신이다.

국민연금의 1월 말 기준 국내주식 운용 규모는 시가총액(2546조5320억원)의 5.4%(138조740억원)에 달한다. 외국인 비중이 27.6%(704조390억원)로 더 높지만 국민연금은 단일 기관투자자인 만큼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핵심 산업의 국부유출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는 국민연금의 무릎을 주저앉히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이 정해진 미래로 다가오면서 '밸류업을 통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비중을 늘리자'는 주장은 허공을 맴돌고 있다.

국민연금 손협 운용전략실장은 "오는 2030년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나가는 보험료가 커지고, 2040년 이후 감소하는 상황에서 연금급여 지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유동성을 고려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늘린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는 국내투자를 추월했다. 해외투자 비중은 2023년 기준 51.5%다. 2028년 60%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2023~2027년 중기재정전망에 따르면 2027년의 연금보험료 수입은 66조757억원인데 연금급여 지출은 66조1433억원으로 역전된다. 장기 재정추계보다 3년 앞서 고갈의 징후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기금 고갈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국내주식 매도보다는 해외주식 매도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나온다. 차후 해외주식 매도를 고려하는 만큼 당장은 해외주식을 사 모으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비중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성숙기에는 연간 수십조원가량의 매도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연금은 한국 증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자산운용사를 통한 간접투자 등으로 국내 자본시장을 형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를 막을 수 없다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에 대한 순차적 퇴장을 도울 때다. 개인투자자들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보다 미국 주식을 믿는 등 이른 바 '투자이민'이 본격화되기 전에 대처해야 한다.
오는 6월 공매도 재개와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람이 없다.

gg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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