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특별기고] '金사과'에 가려진 병해충의 위험

이보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8 18:14

수정 2024.04.08 21:18

임규옥 검역기술연구원 전 FAO/IPPC 의장
임규옥 검역기술연구원 전 FAO/IPPC 의장
우리 식탁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식물은 토양 등 환경이 뒷받침돼야 하고, 병원균과 해충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다. 병해충이 한번 유입되면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투입해도 피해를 막는 것이 매우 어려워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많은 국가들이 병해충 유입 방지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발효한 위생검역조치(SPS) 협정은 공산품과 달리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동식물의 특성을 고려해 국가들이 수입제한 등의 위생조치를 취할 수 있는 주권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조치들은 국제식물보호협약(IPPC)에서 채택된 국제 기준에 따른 위험분석을 거쳐서 과학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 대부분의 국가는 이런 국제기준에 따라 병해충 위험분석을 실시 중이다.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8단계 수입위험분석 절차도 국제기준을 따른 것이며 흔히 볼 수 있는 오렌지, 망고 등 수입 과일들도 치밀한 병해충 위험분석을 거쳐 마련된 기준에 따라 생산되고 검사를 받은 뒤 수입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전문가들이 병해충 위험분석을 실시하며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병해충 위험분석이 국제적으로 분쟁의 대상이 된 경우는 없다.

다만 새로운 병해충이 우리나라에 어떤 피해를 입힐 것인지 예측하고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병해충은 원산지보다 새로운 지역에서 훨씬 심한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소나무 에이즈'로도 불리는 소나무재선충은 북미가 원산지인데, 북미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내성이 생겨 큰 피해를 입지 않지만 내성이 없는 아시아 소나무 들은 급속히 말라죽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별법 제정과 500억원 이상의 국가예산 투입 등 총력을 다했음에도 2022년에만 약 38만그루의 소나무가 고사했다.

최근 사과 가격이 상승하면서 가격안정의 한 방안으로 수입 허용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수입 허용은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표적 온대지방 과실인 사과나 배를 통해 새로운 병해충이 들어오면 환경이 비슷한 우리나라에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사과와 배는 국내 산업 규모가 커 병해충에 의한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사과와 배에 대한 병해충 위험평가는 다른 과일보다 더 정밀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오히려 절차를 생략해 신속하게 수입하자는 주장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금사과'로 인한 국민의 우려도 이해하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정밀한 병해충 위험평가를 거쳐 사과와 배가 안전하게 수입되도록 검역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와 전쟁 등으로 국제 식량공급망도 흔들리면서 안정적 국내 생산기반과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검역의 중요성을 무시하면 병해충이 유입돼 우리나라의 사과 생산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진정한 국익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할 때다.

임규옥 검역기술연구원 전 FAO/IPPC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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