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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와 로커의 험난한 자아찾기…'너드美' 뮤지컬 뜬다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8 18:14

수정 2024.04.09 11:08

인싸가 된 아싸 '디어 에반 핸슨'
불안장애 앓는 고등학생이 주인공
사소한 거짓말에 벌어지는 이야기
LED 무대 연출로 보는 재미 'UP'
명작 록뮤지컬 '헤드윅'
'조정석표 애드립' 맛깔나는 연기와
록콘서트 장 방불케하는 현장감까지
소외되고 방황하는 삶의모습 그려내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에스앤코 제공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꽃피는 봄에 뮤지컬 팬들의 마음을 훔친 주인공도 인생이 꽤나 고달픈 이들이다. 불안증을 앓고 있는 외톨이 고등학생과 남자도 여자도 아니게 된 파란만장한 인생의 로커 헤드윅. 아시아 초연에 나선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과 마침내 대극장에 진출한 스테디셀러 '헤드윅'이 인터파크티켓에서 주간랭킹 1, 2위를 차지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자식도 부모도 위로받는 '디어 에반 핸슨'

2017년 토니상 작품상 등 6관왕에 오르며 작품성을 입증한 '디어 에반 핸슨'의 한국어 프로덕션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영화 '라라랜드' '알라딘'의 작사·작곡 듀오 '파섹 앤 폴'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얼떨결에 '인싸'가 되는 '아싸' 고등학생의 이야기는 보편성과 동시대성을 획득하며 관객의 눈물샘을 쏙 뽑는다. "찐따와 사회부적응자의 케미란, 귀여운 것" "힘들던 마음에 위로 한가득" "에반의 이야기에 감동, 넘버는 최고" 등 지난달 28일 개막한 이 작품에 벌써부터 관객 반응이 뜨겁다.


'디어 에반 핸슨'은 불안장애를 극복하려 애쓰는 고등학생 에반 핸슨이 주인공이다. 동시에 자살한 동급생 코너와 두 소년의 부모 역시 이 작품의 중심축을 이룬다. 이혼한 워킹맘과 단둘이 사는 에반은 매일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며 나답게 행동할 수 있는 멋진 하루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의 다친 팔 깁스에 응원 메시지를 써줄 친구도, 그걸 해달라고 부탁할 용기도 없다. 그러다 짝사랑하던 조이의 오빠인 반항아 코너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작은 오해로 코너의 절친이 된 에반은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시작한다.

크고 작은 LED 화면이 여러 겹 형태로 설치된 무대는 SNS가 일상화된 오늘날과 겹쳐지고, 에반의 거짓말은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아 공감을 자아내며, 코너를 향한 추모의 움직임은 누구다 다 외롭고, 또 함께하고 싶다는 인지상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텅 빈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면 누가 날 찾아줄까', '서있기 조차 힘들다 느껴도 세상으로 손 내밀어요. 당신을 찾을게요' 등 쓸쓸한 가사와 대조되는 밝은 선율과 리듬의 넘버는 캐릭터의 감정을 대변하며 마음을 파고든다. 양주인 음악감독은 "각각의 넘버가 드라마에 기가 막히게 녹아든다"며 "까다로운 음악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난 뒤 우리의 감정을 실어 우리만의 것으로 다시 단단히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김성규·임규형과 함께 '에반 핸슨' 역을 연기한 박강현을 비롯해 출연진의 노래와 연기의 합이 좋다. 6월 23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 '헤드윅'의 조정석. 쇼노트 제공
뮤지컬 '헤드윅'의 조정석. 쇼노트 제공

■상징이된 '헤드윅' 강력한 캐릭터와 음악의 힘

"작은 소극장에서 시작된 헤드윅이 샤롯데에서 공연을 올리게 된 것 자체가 정말 역사적인 날 아닌가. 오프닝 할 때부터 감동이었고, 뜨거웠고 감사했다."(헤드윅 역 조정석). 1994년 미국 뉴욕에서 첫선을 보인 30년 역사의 이 '명작' 록뮤지컬은 한국 공연 20년 만에 벌써 14번째 시즌을 맞았다. 그동안 조승우, 오만석, 송창의, 엄기준, 조정석, 윤도현, 정문성, 변요한, 유연석, 마이클 리 등 수많은 스타 배우들이 거쳐간 스테디셀러다. 이번에는 조정석·유연석·전동석이 음악을 통해 상처로 얼룩진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로커 헤드윅으로 돌아왔다.

지난 6일, 8년 만에 헤드윅으로 복귀한 '뽀드윅' 조정석이 무대 위 앵그리인치 밴드와 남편 역 이츠학(장은아)의 소개로 공연장 입구에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마치 헤드윅의 콘서트에 온 것 마냥, 그의 입장 모습이 실시간으로 무대 위 화면으로 송출돼 공연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특히 조정석의 전매특허인 끼와 재치로 어디까지가 대본이고 애드립인지 헛갈릴 정도로 현장성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삶의 페이소스가 진하게 배어있는 '락 스피릿' 충만한 음악의 힘이 강력했다. 예상과 다른 사소한 아쉬움 등을 모두 날렸다. 그리고 헤드윅의 생명력은 비단 성소수자뿐 아니라 소외되고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캐릭터에 있다는 것이 음악을 통해 절절히 와 닿았다.


2006년부터 '헤드윅'과 인연을 맺었던 조정석은 "'헤드윅'은 언제나 내 심장을 뜨겁게 하는 작품"이라며 "여러 시즌에 참여했지만 할 때마다 새롭고 또 다양한 감정들과 관점들이 생겨나 저를 성장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 "요즘 좋아하는 넘버는 '미드나잇 라디오'"라며 "헤드윅이 누구이며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답을 제시해주는 곡 같다"고 말했다.
폭발적 가창력의 장은아는 '내게 헤드윅이란' 물음에 "너와 나의 나약하고 아픈 걸 끌어안아 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6월 23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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