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美·EU 녹색산업 위기감… 무역전쟁으로 번진 中저가수출[글로벌 리포트]

이석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14 19:23

수정 2024.04.14 19:23

작년 신에너지차 수출 중국 세계 1위
태양광패널·풍력터빈시장도 장악 앞둬
EU, 통상위협대응반 꾸려 中분쟁 대비
옐런 이달초 방중, 과잉생산 문제 제기
저가 중국산제품에 덤핑관세 부과 경고
리창 "경제문제,정치·안보화 안돼" 반발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 대규모 지원 발표
美·EU 녹색산업 위기감… 무역전쟁으로 번진 中저가수출[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이석우 특파원】 중국의 초저가 수출 공세가 소비재를 넘어서 전기자동차(EV),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 최신 친환경 '녹색산업' 까지 밀어닥치면서 지구촌의 새로운 무역보호주의 물결과 무역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중국산에 대한 보조금 조사에 착수하고 관련 법규를 만드는가 하면 반덤핑 관세 카드 등을 만지작 거리며 전방위적인 수입 저지 대응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방중을 통해 과잉 생산에 바탕을 둔 초저가 수출 문제를 양국 현안으로 올렸다. 중국 당국이 전략적으로 육성한 최신 산업제품들이 지구촌 곳곳에 유입되면서 중국발 '디플레이션 수출'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문제를 삼았다.

■과잉 생산 줄이라는 美, 설비 투자 늘리는 中

미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옐런 장관은 지난 4일 시작한 6일간의 중국 방문에서 과잉 생산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중국도 추가 협상에는 동의했지만, 기본 입장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국내 소비 부진 속에 과잉 생산품을 수출하고 있는 중국이나 국내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이를 막아야 하는 미국, EU는 양보할 수 없는 외나무 다리에서 부딪쳤다.

옐런 장관은 지난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저가 중국산 제품 수입으로 새로운 산업이 파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중기간 CNBC와 인터뷰에서 이들 '녹색 에너지 수출' 분야에서 중국의 저가 공세가 계속된다면 "그 어떤 대응도 배제하지 않는다"라며 덤핑 관세 부과 등의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산업생산력 강화에 집중해 온 중국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았다. 리창 총리는 옐런 장관을 베이징에서 만난 지난 7일 "경제 문제를 정치화·안보화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중국의 신에너지 산업 발전은 글로벌 녹색·저탄소 전환에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맞섰다.

같은 날 중국 인민은행은 홈페이지를 통해 과학기술 분야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 지원 강화 등 자국 과학기술 분야 기업의 지원을 위해 5000억위안(약 93조4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시행을 공개했다. 또, 공업정보화부 등 7개 부처들이 9일 발표한 '공업분야 설비갱신 촉진 방안'에 따르면, 2027년까지 산업계 설비 투자 규모를 2023년에 비해 25% 이상 늘리기로 했다. 과잉 생산 및 저가 수출 자제라는 미국 요구를 무시하고 산업 규모와 생산력을 강화시켜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중국은 EV,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새로운 3대 전략 수출 상품'으로 삼고 전국가적인 동원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EU는 자국 산업 체계와 기업들이 가성비 높은 중국 제품들과의 경쟁 속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서 밀려오는 중국산 차단에 부심하고 있다. 물러설 여지가 없는 힘겨루기는 무역 장벽을 더 높이며 무역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중국산 EV에 대한 미국의 수입 관세는 27.5%나 되지만 더 올라갈 전망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멕시코에서 제조되는 중국산 EV에 까지 관세를 100% 이상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EU vs. 중국, 사실상 무역전쟁 돌입

옐런 장관이 이 문제를 부각시켰지만 EV 등 신에너지 산업을 둘러싸고 프랑스 등 EU와 중국은 이미 사실상 무역전쟁 속에 돌입한 상태이다. EU는 지난해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에 착수했고 프랑스는 지난해 12월부터 개편·시행 중인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중국산을 제외시켰다. 그러자 중국 상무부는 지난 1월 5일 EU가 원산지인 수입 브랜디에 대해 반덤핑 조사 착수로 대응했다. EU산 전체가 대상이지만, 중국이 수입하는 브랜디 가운데 프랑스산이 99%여서 중국산 EV를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한 프랑스를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EU는 통상보복에 대비하기 위해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시행했다. EU 회원국에 대해 제3국이 '통상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되면 역내 투자 제한, 배상금 부과 등 맞대응 조치를 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로 이미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 대비하고 있다.

EU에서 '중국 EV의 침공'은 태양광 패널에 이어 산업 생태계를 뒤흔들 심각한 문제로 부각 됐다. 유럽산보다 최소 20%가 저렴한 중국산 확산으로 EU 역내 기업들이 설 곳이 없어진다는 우려가 힘을 얻었다.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를 앞세운 중국의 차 수출은 지난해 491만대로 세계 1위였다. 전년 대비 57.9%가 늘었다. 신에너지 차는 2022년보다 77.6%나 늘어난 120만 3000여대가 수출됐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등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신차 판매 댓수는 전년도에 비해 12% 늘어난 3009만 4000대였다. 신에너지차 비율은 전년 대비 5.9%p 증가한 31.6%였다. 다른 나라들이 겁 먹을 만한 가파른 성장세이다.

다른 중국산 수출품에 대한 EU의 유입 저지도 본격화됐다. EU는 지난 3일부터 중국 태양광 관련 기업에 대한 불공정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과도한 보조금에 기댄 낮은 원가로 외국 기업이 EU의 공공입찰을 따내는 것을 막겠다며 지난해 7월 만든 역외보조금 규정(FSR)을 중국 기업들에 연달아 적용한 것이다.

EU 회원국인 루마니아의 110MW급 태양광 발전 사업 공개 입찰에 참여한 세계 최대 태양광업체 중국 룽지뤼넝의 독일내 자회사와 중국 국영 상하이전기그룹의 컨소시엄 등이 조사 대상이 됐다. EU는 지난 2월에는 불가리아 공공조달 입찰에 참여했던 중국 국영 열차제조업체 중처그룹(CRRC)의 자회사 중처쓰팡을 대상으로 첫 역외보조금 규정 위반 조사를 발표했었다. 중처쓰팡 측은 EU 조사가 시작된 지 한 달만인 지난 3월말 결국 사업에서 손을 뗐다.

전기차에서 시작된 EU의 압박은 풍력터빈에까지 확산됐다. 중국의 청정에너지 기술 관련 기업에 대한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부집행위원장은 지난 9일 미국 프린스턴대 연설에서 FSR을 언급하며 "중국 풍력터빈 공급업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라고 발표했다. 그는 업체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스페인, 그리스, 프랑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풍력발전단지 개발과 관련한 상황을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EU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중 겨우 3% 미만만이 유럽에서 생산된 것"이라면서 "중국은 과잉 생산의 유럽 수출을 포함해 다른 청정 기술 분야에도 동일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라고 공격했다. 또 "태양광 패널에서 발생한 상황이 EV, 풍력 (장비) 및 필수 칩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볼 여유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中, '녹색 보호주의' 경고하며, 보복 시사

지난해 중국은 전세계 배터리 수출의 절반을 차지했고 전기차 수출 점유율도 47%를 넘어섰다. 세계 풍력에너지위원회(GWEC)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22년 기준 전 세계 풍력 설치 용량의 60% 가량을 공급했다.

미국과 EU 등은 "중국의 산업 생산 능력은 내수뿐 아니라 현재 세계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상당히 넘어섰다"는 입장이다. 넘치는 제품들을 수출로 밀어내면서 디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는 불편한 심기이다. 중국 당국의 보조금도 현안이 됐다. 중국은 2009년부터 자국 소비자에게 EV 구매세를 인하한 데 이어 2014년부터 완전히 면제했다. 2009∼2022년 중국은 300억달러(약 40조5000억원)의 세금을 면제했고, 2027년까지 970억달러(약 131조원)를 추가 면제해줄 전망이다.

EU는 중국산 철강과 플라스틱 등에 대해서도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철강은 과잉 생산 제품이 초저가로 수출되는 대표 사례이다.

중국 세관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강재 수출량은 9026만t으로 전년 대비 36%나 늘었다. 반면 수출액은 8% 줄어든 845억 달러(약 117조 325억원)였다. 중국 국내 건설 부진 속에서 30% 싸게 수출한 것이다.

중국국가통계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전년 대비 0.1% 증가한 10억1900만t이었고 소비는 3% 감소한 9억3300만t 이었다.
국내에서 소비하고 남은 약 8600만t은 지난해 수출량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국내 재고의 가격을 낮춰 수출로 밀어 내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옐런의 방중 속에서 랴오민 중국 재정부 부부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녹색 보호주의' 조치의 수위를 높이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중국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보복 조치를 시사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