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검찰 개혁과 빨대사회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14 19:29

수정 2024.04.14 19:29

김성환 사회부장
김성환 사회부장
22대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범야권의 입법정책이 어떻게 흐를지 각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진보당 등 범야권은 이번 총선에서 192석을 거머쥐었다. 각 쟁점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수 있고, 여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더라도 무력화할 수 있다. 입법 속도가 포르쉐급으로 빨라질 수 있다.

'검찰개혁'도 민주당의 대표적 공약 중 하나다. 민주당은 5가지 검찰개혁 방안을 공약에 못 박았다.
수사와 기소권을 분리하고, 수사절차법을 개정하며, 검사의 기소재량권 남용을 막는 사법 통제장치를 만든다는 내용과 함께 변호인 비밀유지권 법제화, 법조 일원화 등을 나열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검찰청을 기소청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법조계에선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한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조국 대표의 '기소청' 발언이다. 검찰의 수사권한을 아예 없애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미 과거의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여러 차례 검찰의 힘을 뺐다. 몇 가지를 나열해 설명한다. 지난 2022년 1월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한 피의자의 권리를 강화했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의자가 재판 과정에서 이를 '부인'하면 신문조서 전체의 증거능력이 사라진다. 같은 해 5월 개정 형사소송법은 검찰의 수사 개시권한을 경제·부패 2가지 영역으로만 줄였다. 이를 흔히 '검수완박'이라 한다. 이에 앞서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도 삭제됐다.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경찰 수사지휘권이 없고, 수사영역이 줄어든 검찰은 경찰이 수사한 사건이 넘어오기 전까지는 사건을 인지할 수도, 사건에 개입할 수도 없다. 사건은 경찰에 쌓여가지만 경찰 수사인력이 확충되지 않으면서 사건 처리기간은 점점 지연되는 추세다. 법조계에선 검수완박으로 인해 '수사의 오너십'이 해체됐다고 지적한다. 경찰수사관-경찰수사과장-검찰수사과장-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 순으로 이루어진 범죄 수사 컨베이어벨트가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형사사건은 1차 수사종결권을 가진 경찰이 맡는다. 검사는 추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미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수사 전문이 아닌 기소 전문 조직으로 변했다고 자조하고 있다.

피의자 신문조서 동의 절차는 악용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 312조는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 훌륭한 방어장치는 재판지연을 위한 범죄자들의 '마스터 키'가 되어가고 있다. 검찰이 피의자 신문조서를 치밀하게 꾸밀수록, 피의자는 재판 단계에서 신문조서를 부인할 가능성이 커진다. 쉽게 말해 검찰이 기소할 증거로 만들어 놓은 내용의 일부가 무효화되는 것이다. 재판 자체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최윤희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 검사는 지난달 29일 형사법포럼에 참가, "개정 형사소송법 이후 재판 장기화는 물론이고 범죄 실체 규명에도 적잖은 지장이 생기고 있다"면서 "피고인이 공범의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능력까지 부인할 수 있어 총책이나 교사범 등 범행을 계획하고 지시한 배후인물을 처벌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일부 부조리한 검찰 수사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일부 부작용을 바로잡고자 시스템을 갈아엎는 데는 더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는 한국 형사사법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최근 '빨대사회'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는 "검사의 수사권한이 상당 부분 박탈된 이후 국제 사기범죄 조직을 운영하는 수괴들은 아무 걱정 없이 각종 범죄의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게 됐다"며 "국회의 신속한 결정으로 인하여 수사와 형사재판이 결코 정의로울 수 없게 됐다"고 일갈했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의원들은 입법 추진 전에 이 책을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ks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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