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美, 中국영 철도기업 저가공세에 제동 "계약 취소"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15 16:55

수정 2024.04.15 16:55

중국 CRRC 공장 내부 모습. 신화통신 연합뉴스 제공
중국 CRRC 공장 내부 모습. 신화통신 연합뉴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미국이 중국의 국영 철도차량 제조업체 CRRC(중궈중처)와 맺은 1억8500만달러(2560억원) 규모의 철도차량 도입 계약을 전면 철회했다. 잦은 결함으로 납기 4년이 지나도록 단 1량도 납품하지 못한 데다 터무니없는 입찰가격 덤핑으로 자국 철도시장은 물론 안보까지 교란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다. 우리나라도 국가기간산업인 철도시장의 안정적인 운영과 성장을 위해 현재의 사실상 최저가 입찰제 방식을 개선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낮은 품질로 납기 4년 넘겨...시장 교란 의혹도
15일 미국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현지시간) 펜실베니아주 남동부 교통당국(SEPTA)은 지난 2017년 CRRC와 맺은 1억8500만달러 규모의 2층 전동차 45량 도입 사업 계약을 취소했다.

사유는 품질 문제와 그로 인한 지속적인 납기 지연으로 알려졌다. 해당 프로젝트는 예정보다 이미 4년 정도 지연된 상태로 초도 물량조차 납품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미 프로젝트에 지출된 50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조치도 논의 중이다.

CRRC는 막대한 자국 보조금을 앞세워 미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초저가 응찰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 이번에 취소된 계약 건 역시 CRRC가 경쟁사인 캐나다 봄바르디어보다 3400만달러나 낮은 가격을 써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미국 교통부 감사관실은 CRRC가 '바이아메리카 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외국 기업이 제작하는 철도차량은 부품 70% 이상이 미국산이어야 하며 최종 조립도 미국에서 완료해야 한다.

특히 2019년 12월에 미국 상·하원 군사위원회는 '국방법안(NDAA)' 절충안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국가 보조금을 사용해 저가 공세로 시장을 교란하는 중국 기업들이 자국 내 교통 산업 조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중국 제품이 미국의 주요 인프라와 경제, 군사 등 국가 안보에 위협을 끼치고 있다는 것인데 제재 기업 명단에 CRRC가 포함됐다.

韓도 최저가 입찰제 보완한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이와 관련 국내도 중국산 철도차량처럼 무분별한 해외 업체의 입찰 참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벽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 업체의 시장 교란을 차단할 국산화 부품 사용 조건 두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포함한 국내 주요 철도차량 발주처들은 최소한의 기술 점수만 넘기면 최저가 응찰 기업이 사업을 수주해 사실상 최저가 입찰제도라 불리는 '2단계 규격·가격 분리 동시 입찰제'를 대부분 활용하고 있다. 아무런 규제 없이 국제 경쟁 입찰을 실시해 국내 철도차량 조달시장의 취약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유럽은 자체 규격 규정(TSI)을 두고 있다. 설계나 건설, 개량, 개조, 운영 및 유지관리, 안전 요건 등은 물론 차량에 들어가는 세부 부품 규격까지 포함돼 있다. 튀르키예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비 유럽연합(EU) 국가들도 TSI 만족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CRRC는 지난 3월 불가리아 철도차량 유지보수 입찰 사업 참여 계획을 철회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내수 시장을 왜곡하는 수준의 역외보조금을 받아 해당 사업에 지나치게 낮은 응찰가를 제시했다는 의혹으로 CRRC에 대한 '역외보조금규정(FSR)' 심층 조사를 지난 2월 착수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철도차량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 역시 철도차량 입찰 참여 시 자국법인과의 공동응찰을 의무화한 것을 비롯해 완성차는 7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의 자국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국가기간산업인데다 안보와도 직결된 핵심 교통수단인 철도산업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장벽 세우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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