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팬픽 만들듯 작업… B급 감성, 메이저서 먹혀 실감 안나"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15 18:05

수정 2024.04.15 18:20

'기생수: 더 그레이' 연상호 감독
일본 만화 덕질하다 연출까지 욕심
원작의 세계관·주요 설정은 그대로
연상호식 변주 더한 한국판 기생수
마이너한 장르로 제대로 대형 사고
공개 사흘만에 넷플릭스 비영어 1위
시즌2에는 원작 주인공 신이치 등장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제공
기생수 소탕작전에 나서는 그레이팀의 리더 최준경 역을 맡은 이정현. 넷플릭스 제공
기생수 소탕작전에 나서는 그레이팀의 리더 최준경 역을 맡은 이정현. 넷플릭스 제공
기생수에 몸의 일부만 지배당한 변종 정수인 역의 전소니. 넷플릭스 제공
기생수에 몸의 일부만 지배당한 변종 정수인 역의 전소니. 넷플릭스 제공

"(유명 원작의) 스핀오프를 하면 산업적으로 잘되겠지 그런 생각보다 순수하게 마치 원작 팬으로써 팬픽(fanfic)을 만드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작업했다."

성덕(성공한 덕후·마니아)이라는 말이 있다. 폭력·종교 등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로 주목받고 천만 영화 '부산행'(2016),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021) 등 좀비·크리처·오컬트 등 B급 장르물을 흥행시킨 연상호 감독 역시 성덕이다. 일본만화 덕후였던 그가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1988~1995)를 원작으로 한 6부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로 다시 한 번 글로벌 관객을 사로잡았다.

■"원작의 세계관 공유…이야기는 달라"

지난 5일 공개된 이 작품은 '바디 스내처(신체 강탈)'라는 B급 장르물로 공개 단 3일 만에 비영어권 TV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 연 감독은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고단샤를 찾아가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구상안에 대한 반응이 좋았고 원작자 역시 마음껏 해보라고 했다.
이 작품 덕에 고단샤의 모든 출판물을 보관하는 도서관에 가봤는데, 그곳에서 '아키라' 초판도 봤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B급 세계, 키치(Kitsch)한 세계가 왜 메이저 세계에서 주목받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면서도 "마치 사고 같은데, 이런 사고가 자주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장악한다는 원작의 세계관을 공유할 뿐 등장인물과 이야기는 다르다. 기생생물의 출현에 전담팀 '더 그레이'의 작전이 시작되고, 이 가운데 기생생물 하이디와 공생하게 된 20대 여성 수인(전소니 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원작에선 신이치라는 남자 고등학생이 자신의 오른손에 기생하게 된 미기와 공생하며 기생생물에 맞선다.

연 감독은 "원작의 세계관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면?'이라는 상상 아래 독자적인 캐릭터를 구상했다"며 "캐릭터와 이야기는 다르나 설정은 대부분 원작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신이치와 미기와 달리 수인과 하이디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직접 소통을 어렵게 설정했다. 그러다보니 조폭 강우(구교환 분)나 형사 철민(권해효 분)과 같이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효과가 났다. 수인과 하이디가 서로 상충하는 가치관을 극복하고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모든 이의 화해와 이해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작의 주제의식인 공생과 인간에 대한 탐구는 '기생수: 더그레이'에서도 이어진다. 원작이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과 기생생물의 차이를 다루며 인간을 돌아본다면,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개인과 조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룬다. 직접 대사로 주제를 강조하기도 하는데, "다양한 문화권의 시청자와 극장과 다른 관람 환경을 고려해 더 명확하게 묘사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기생생물보다 무서운 것은 전투력보다 조직에 있다"며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 형태는 무엇인가? 조직이다. 조직의 형태를 만들어서 공생의 형태로 간다. 사실 '기생한다'는 말과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같은 말일 수도, 다른 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일한다"

연상호 감독은 연출뿐 아니라 각본가·프로듀서로 활약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보이는 다작 감독이다. 최근 2년만 봐도 애니메이션 '프린세스 아야'(2022)의 프로듀싱, 영화 '정이'(2022)의 각본·연출, 티빙 시리즈 '괴이'(2022)의 공동연출, 넷플릭스 시리즈 '선산'(2024)의 각본을 썼다. 또 현재 연재 중인 웹툰 '지옥2: 부활자'의 글을 썼고, 현재 영화 '계시록'을 찍고 있다. 내달 새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며, 하반기에는 '지옥 시즌2'를 공개한다.

연 감독은 "프로듀서들이 일정을 잘 짜준다"며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일한다.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육아도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대본 쓰는 게 힘들다. 최근엔 고독함을 느꼈다. 그런데 진짜 하기 싫을 때 해야 프로 아니겠냐. 일이 힘드니까 일이다"라며 프로정신을 드러냈다.

재충전의 필요성에 대해선 "데뷔 전에 강제 휴식기를 오래 가졌다. 시간이 많으니까 오히려 머리가 더 안돌아가더라"며 지금의 방식에 만족하면서도 "매일 매일 꿈과 능력의 괴리를 느낀다"고 괴로워하기도 했다.

"혁신적인 것을 쓰고 싶다는 꿈은 큰데, 몸과 머리가 안 따라주니까 항상 괴리를 느낀다. 얼마 전 내가 만든 작품을 다 봤는데, 난 대중성과 거리가 먼 사람이더라. 그런데 대중성을 갖춰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매번 (나 자신과) 투쟁한다. 언젠가는 대중성을 완전히 내려놓고 무언가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생수: 더 그레이' 말미에는 자신을 기생생물 전문가라고 말하는 '신이치'(스다 마사키 분)라는 남성이 등장한다.
연 감독은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신이치가 등장한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다. 시즌2의 대본도 일부 썼다.
다만 제작 여부는 넷플릭스의 결정이 필요하다"며 웃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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