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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에 교수·PA간호사 번아웃..의료개혁 필요성 시사

강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17 15:41

수정 2024.04.17 15:41

전공의 적은 종합병원 타격 적어..병원내 의료인력 역할 재조정 필요
PA 간호사들, 업무과부하에 지방파견까지
18일부터 간호협회 주도 PA 간호사 교육 시작
[파이낸셜뉴스] 의대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두 달째 이어지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대교수들과 진료보조(PA) 간호사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번사태가 높은 전공의 의존도와 의사와의 경계가 모호한 PA간호사의 수행 업무범위 등 현 의료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함께 PA간호사 제도화 방안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공의 적은 종합병원 타격 적어..병원내 의료인력 역할 재조정 필요

실제 이번 의료대란으로 전공의 비중이 의사중 30~40%를 차지하는 대형 상급종합병원들은 매일 적자를 이어가며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지난 3월 매출은 2010억원으로 전년 동월(2494억원) 대비 19%(484억원) 감소했다. 순손실은 400억원대로 추산되며 서울아산병원은 올해 순손실이 4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직원들 대상으로 지난 8일부터 오는 19일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서울대병원도 매일 2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면서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이와 달리 수련하는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위주로 운영되는 2차 병원은 전공의 중심으로 이뤄지는 의사 집단행동 영향을 적게 받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던 비응급·비 중증 환자들이 2차 병원으로 분산되면서 의료시스템이 정상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전공의를 포함한 병원내 의료인력의 업무를 명확히하고, 정부의 세부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최근 개최한 ‘Korea Helthcare Congress(KHC) 2024’에 참석한 윤석준 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전공의를 포함한 병원내 의료인력의 업무를 명확히하고, 정부의 세부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동안 대형 상급종합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면 근로자로서 역할과 수련생으로서의 역할이 8대 2 정도였다"며 "이 역할을 5대 5 또는 4대 6으로 바꿔야 전공의도 훈련을 의미가 있고, 병원도 정상화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 근로를 낮추면서 발생하는 역할을 전문의나 PA들이 할 수 있는데, 이들이 종합적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의사-간호사와, 간호사-진료지원간호사와의 업무범위를 누가 무슨 역할을 해야하는지 병원에서도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대란 장기화 속 고통받는 PA.."업무과부하에 지방파견까지"

전공의 집단사직 장기화로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들도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전공의를 대신해 업무 과중이 심각해진 데다 병원의 비상경영으로 근무여건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서다.

백찬기 간호협회 홍보국장은 "전공의들이 지난 2월 20일 현장을 떠난 후 병원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간호사들이 업무를 떠안고 있다"라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병원들은 간호사들에게 강제 무급휴가를 보내거나 월급을 동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 국장은 "현재 병원의 상황은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의대정원을 늘려 의료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병원에서 매달 수억원씩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는데 병동 간호사들의 경우 1개월부터 1년까지 다른 지역으로 파견을 보내고 있다"며 "환자가 줄어들어 병동을 닫으면서 간호사들이 무작정 무급으로 쉬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간호사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지방 파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1년차 전공의들이 일부 복귀했으나 교육해 줄 선배들이 없어 PA간호사들이 교육을 맡아서 하고 있다"라며 "업무는 계속 늘어나는데 처우는 악화하고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각 병원이 재정난을 호소하며 간호사 채용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취소하면서 전공의 집단사직 장기화의 불똥은 현직은 물론 예비 간호사에게까지 튀고 있다. 간호사 채용 시험 합격 후 입사 시점이 무기한 미뤄지는 ‘입사 지연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전공의 복귀시 PA와 업무 겹쳐"..PA 법제화 담긴 '간호법' 촉각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PA간호사를 증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으로 복귀하면 PA간호사와 업무범위가 겹쳐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의료공백 상황으로 한정된 PA 간호사 역할 강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법적 보호망을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PA 간호사를 증원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PA간호사 2715명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말 기준 상급종합병원 47개소와 종합병원 중 328개소에 8982명의 PA간호사가 일하고 있는데, 증원 시 PA간호사는 총 1만1697명으로 늘어난다. 정부가 발표한 2715명은 개별 병원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각 병원에서는 임상 경력이 오래되고, 숙련된 간호사들을 PA 간호사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의료공백을 메꾸기 위해 PA 간호사의 역할을 인정하는 시범사업이 추후 전공의 복귀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전공의 복귀 시 업무범위가 겹쳐 현장에선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말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새로운 간호사법을 마련하고 이를 발의하기 위한 검토의견 수렴에 나섰다.
법안은 전문간호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 관련 사항을 규정한 독자적 법률을 제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다만 이번 간호법안에는 지난해 간호법안에 포함돼 있었던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문구가 빠졌다.
당시 의사 단체들은 이것을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의료·돌봄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라 반발한 바 있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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