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주사나 유황과 같은 광물질 중독에는 OO고기가 약이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20 06:00

수정 2024.04.23 16:13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과거에 심신안정약으로 사용했던 주사(朱砂) 광물(왼쪽)은 수비주사(오른쪽)로 만들어 사용해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중독증상이 있었다.
과거에 심신안정약으로 사용했던 주사(朱砂) 광물(왼쪽)은 수비주사(오른쪽)로 만들어 사용해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중독증상이 있었다.

옛날에 한 의원이 있었다. 그 의원은 붉은 색 광물인 주사(朱砂)를 약으로 많이 사용해서 난치병 환자를 치료했다. 주사는 단사(丹砂)라고도 한다.
주(朱)자나 단(丹)자는 모두 색이 붉다는 의미다.

의서에 보면 주사는 심(心)에 들어가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나와 있다. 그래서 심신안정 효과가 있는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이나 주사안신환(朱砂安神丸)과 같은 처방에 주사가 들어간다. 환약 이름에 단(丹) 자가 쓰인 것은 귀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통 주사가루를 입혀서 색이 붉은 것들이다.

연금술사들도 주사를 많아 사용했다. 연금술사들은 “만약 장생하여 늙지 않고 명(命)을 보호하고 신(神)을 안정시키고자 할 때는 단사(丹砂, 주사)를 먹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주사를 이용해서 불로장생약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민간에서도 주사를 먹었다. 또한 귀신을 물리친다고 믿어서 부적의 붉은 글씨를 쓰는데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주사는 황화수은 화합물로 수은을 제거해서 사용해야 했다. 주사에 포함된 수은을 제거하는 것을 수비(水飛)한다고 하는데, 수비하는 과정은 무척 까다롭고 수고로운 작업이다.

의원은 먼저 주사를 유발에 넣고 잘게 깨서 갈아냈다. 그러고 나서 자석으로 철가루를 제거했다. 그 다음에는 유발에 물을 채워 넣은 후 물과 섞여 있는 주사를 절구공이로 곱게 빻았다. 물을 넣지 않고 갈아내면 열에 의해서 수은이 기화되면서 호흡기로 흡입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자칫 실명을 할 수도 있다.

유발에 물을 넣고 주사가루를 아주 곱게 빻으면 현탁액처럼 섞인다. 이때 위로 뜬 것들을 깨끗한 그릇에 옮겨서 침전시켜 말린다. 말린 주사에 다시 물을 넣고 갈아 주는데 이렇게 걸러내서 말리는 과정을 7번 반복한다. 그러면 수은독성이 제거된 수비주사(水飛朱砂)를 얻을 수 있다.

의원의 약방에는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주로 정신이 없거나 미친 것 같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벌렁거리고 깜짝깜짝 잘 놀라는 환자들이 많았다. 의원은 수비주사를 처방해서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다. 주위의 의원들은 명의가 도대체 어떤 약을 쓰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한 의원이 명의에게 “의원님은 대체 어떤 비방이 있기에 그리 심약한 환자들이 처방만 하면 낫는 것이요?”하고 물었다.

그러나 명의는 “제 처방은 별것이 없습니다. 주사를 수비해서 사용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그 붉은 주사 말씀인가요?”하고 놀랐다.

이 말을 들은 의원들은 자신들도 수비주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돈에만 관심이 있고 용렬했기에 정성을 가하지 않고 수비를 대충 대충했다. 그래서 이들의 수비주사에는 수은이 여전히 그대로 함유되어 있었다. 심지어 만들어 놓은 수비주사가 없으면 주사를 불에 구워서 그냥 곱게 갈아서 가루내어 사용하기까지도 했다. 수은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제대로 수비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의원들은 그들이 만든 수비주사를 환약에 넣어 환자들에게 처방했다. 그런데 이 처방을 복용한 환자들은 얼굴빛이 붉어지고 가슴이 불타는 듯했다. 목이 타들어가는 듯 아팠고 복통과 함께 구토, 설사도 있었다. 오랫동안 복용한 환자들의 입안에는 구창(口瘡)이 가득했다. 바로 수은중독이었다.

의원들은 명의를 찾아 항의를 했다. 한 의원이 “당신이 알려준 방법대로 주사를 환자들에게 처방했더니 화염(火炎)과 같은 부작용이 심해서 모두들 더 큰 병을 얻었다고 아우성이니 이를 어쩌란 말이요?”라고 하면서 삿대질을 하면서 항의했다.

그러나 명의는 의원들이 수비주사를 대충 만들어 처방했다는 것을 알고 “당신들은 어쩌자고 제대로 수비도 안된 주사를 함부로 약에 넣었단 말이요. 주사는 오독(五毒) 중에 하나요. 주사에는 대열(大熱)한 독이 있어서 수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사는 심신을 진정시키고 길러 주지만 수비를 하더라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오히려 병을 키우고 새로운 병이 생길 뿐입니다. 자칫 황천길로 갈 수도 있소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의원들은 깜짝 놀랐다. 의원들은 겁이 났다. 한 의원이 벌벌 떨면서 “그렇다면 해독을 시키는 처방이 있으면 좀 알려주시오. 제가 처방한 주사를 먹고서 환자들이 죽을 것 같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라고 사정을 했다.

명의는 “그렇다면 돼지고기를 먹이도록 하시오. 의서에 보면 돼지고기는 맛은 시고 성질은 차서 특히 주사의 독을 억누르고 열독을 누르고 수은중독으로 인한 풍증(風症)을 풀어주고 흙구덩이 속의 나쁜 기운에 중독된 것을 풀어준다고 했소이다. 요즘 유황도 많이 먹는데, 돼지고기는 또한 유황의 독을 푸는 효과도 있소이다.”라고 했다.

과거에는 허리나 음부의 냉증, 다리가 차고 아프며 힘이 없을 때, 근골을 튼튼히 하고 양기를 키우고자 유황을 먹었다. 유황도 성질이 아주 뜨겁고 독이 있다. 그래서 유황도 곱게 살아서 수비해서 써야 했다. 그러나 제대로 수비를 안하거나 너무 많이 복용하면 독성이 생긴다.

명의는 이어서 “주사독으로 열이 나고 매우 위독할 때는 살찐 기름진 돼지고기 5근, 파와 염교 각 반 근을 삶아서 먹거나 국을 만들어 먹게 하면 좋소. 이렇게 하면서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면서 열독이 설사로 빠져나오는 것이요.”라고 일러주었다.

돼지고기에는 아연, 셀레늄과 함께 아미노산이 풍부해서 중금속을 흡착해서 배출하는 효능이 있다. 또한 황함유식품도 중금속 배출효과가 있어 파, 염교, 마늘, 양파, 콩, 계란 노른자와 함께 먹는 것도 좋다. 명의가 돼지고기와 함께 파와 염교를 함께 삶아 먹으란 것도 괜한 말이 아니다.

그러자 또 다른 의원이 “돼지고기는 가난한 집안은 구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돼지비계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명의는 “돼지비계도 좋소이다. 돼지비계는 장위를 매끄럽게 하고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해서 부종에도 좋고, 주사나 석웅황과 같은 독을 제거하고 제반 간독(肝毒)을 제거하면서 풍열(風熱)을 제거하고 폐를 촉촉하게 하기 때문에 갑자기 목이 쉬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상기가 되면서 기침이 나는 것에 특효하오. 특히 광물성 독과 흙 속의 독을 제거하는데 좋아서 요즘처럼 토우(土雨)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돼지비계를 일부러라도 먹는 것이 좋소.”라고 했다. 토우(土雨)는 흙비로 요즘의 황사비에 해당한다.

명의의 설명을 듣고서 한 의원이 의아해하면서 “많은 육류 중에 하필 돼지고기만 그런 효능이 있다는 것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명의는 “돼지는 수(水)에 속하면서 성질이 차서 화열(火熱)을 제거하고 열독을 씻어내는 효능이 있기 때문인 것이요. 참고로 유황독은 돼지고기 좋지만 오리고기를 끓여서 먹어도 도움이 됩니다. 오리고기 또한 냉성으로 열독을 푸는 효과가 있소이다.”라고 했다.

의원들은 서둘러서 주사 부작용이 나타난 환자들에게 돼지고기와 파, 염교 등을 넣어 삶아 먹게 했다. 그랬더니 상열감이 줄고 얼굴이 붉은 것이 가라앉았으며, 설사를 하고 나더니 불덩이가 들어있는 것 같았던 흉격과 장위의 열기도 사라졌다.

실제로 옛날에는 주사를 약으로 함부로 사용해서 주사독(朱砂毒), 단사독(丹砂毒), 유황독(硫黃毒)에 관련된 내용이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해독하는 방법이 필요했고, 돼지고기를 먹으면 해독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도 수비주사를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조심해야 한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도 일을 마치면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 경험에 의한 식이요법이었겠지만 일리가 있는 해독법이다. 요즘에도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을 하거나 봄철 황사가 많이 부는 날에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이 역시 비웃을 일이 아니다.

* 제목의 ○○은 ‘돼지’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活幼心書> 水飛硃砂. 先以碎石引去鐵屑, 次用水乳缽內細杵, 取浮者飛過, 淨器中澄清去上余水, 如此法一般精製, 見硃砂盡乾用. (수비주사. 먼저 자석으로 철가루를 제거하고 그 다음 물을 써서 유발에서 절구공이로 곱게 빻는다. 물에 뜬 것을 취해서 깨끗한 그릇에 옮겨서 침전시키고 물을 따라 낸다. 이와 같은 것이 일반적인 정제법인데, 주사가 보이면 말려서 쓴다.)
<본초강목> ○ 丹砂. 身體五臟百病, 養精神, 安魂魄, 益氣明目, 殺精魅邪惡鬼. 久服通神明不老. (단사. 신체와 오장의 온갖 병을 치료하고, 정신을 기르고 혼백을 안정시키며, 기를 북돋우고 눈을 밝게 한다. 요사한 귀신과 사악한 악귀를 죽인다. 오래 복용하면 신명이 통하여 늙지 않게 된다.)
○ 朱砂鎭養心神, 但宜生使. 若煉服, 少有不作疾者. 一醫疾, 服伏火者數粒, 一旦大熱, 數夕而斃. (주사는 심신을 진정시키고 길러 주지만 생으로 하여 사약으로 써야한다. 제련하여 복용하면 질병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적다. 어떤 의원이 질병을 앓자 단사를 불에 복하여 몇 알을 복용하였는데, 하루 지난 아침에 심한 열이 나다 며칠 뒤에 죽었다.)
○ 豭猪肉. 酸冷無毒. 壓丹石, 解熱毒, 宜肥熱人食之. 補腎氣虛竭.千金 療水銀風, 並中土坑惡氣. (숫돼지고기. 맛은 시고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단석약의 독을 억누르고, 열독을 풀어주므로 비만하고 열이 나는 사람이 먹으면 알맞다. 신기가 허하거나 고갈된 것을 보해 준다. 수은 중독으로 인한 풍증을 풀어 주고 흙구덩이 속의 나쁜 기운에 중독된 것을 풀어 준다.)
○ 脂膏. 煎膏藥, 解斑蝥ㆍ芫靑毒.別錄 解地膽ㆍ亭長ㆍ野葛ㆍ硫黃毒ㆍ諸肝毒, 利腸胃, 通小便, 除五疸水腫, 生毛髮. 利血脈, 散風熱, 潤肺. 入膏藥, 主諸瘡. (돼지비계. 맛은 달고 성질은 약간 차고 독이 없다. 졸여서 고약을 만들어 쓰면 반묘나 원청의 독을 풀어 준다. 지담, 정장, 야갈, 석유황의 독을 풀어 주고, 여러 가지 간의 독을 풀어 준다. 장위를 매끄럽게 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오달과 수종을 제거하고, 모발을 나게 한다. 풍열을 흩어 내며, 폐를 자윤한다. 고약에 넣으면 여러 가지 창을 주치한다.)
<동의보감> ○ 豚肉. 性寒一云涼, 味苦, 微毒. 解熱. 療水銀風, 壓丹石毒. (돼지고기. 성질이 차고 서늘하다고도 한다. 맛은 쓰며 약간의 독이 있다. 열을 풀어준다. 수은 중독과 단석의 독을 치료한다.)
○ 石硫黃. 性大熱, 味酸, 有毒. 主心腹積聚, 邪氣冷癖, 腰腎久冷, 冷風頑痺, 脚冷疼弱無力. 堅筋骨, 壯陽道, 除頭禿惡瘡, 下部䘌瘡, 殺疥癬蟲. 凡使, 熔化入麻油中, 或入童便中浸七日, 細硏水飛用. (석유황. 성질이 아주 뜨겁고 맛은 시며 독이 있다. 명치의 적취와 사기, 냉기가 뭉친 것, 허리와 신의 오래된 냉증, 냉풍으로 감각이 없는 것, 다리가 차고 아프며 힘이 없는 것에 주로 쓴다. 근골을 튼튼히 하고, 양기를 돋우며, 머리가 벗겨지는 것과 악창, 음부의 감닉창을 없애고, 개선충을 죽인다. 쓸 때는 녹여서 참기름에 넣거나 동변에 7일 동안 담갔다가 곱게 갈아 수비해서 쓴다.)
○ 硫黃毒. 令人心悶, 取猪羊熱血飮之. 又宿冷猪肉, 及鴨肉羹冷食之. 又黑錫煎取汁飮之. 又生羊血飮之. (유황에 중독되어 가슴이 답답할 때는 돼지나 양의 뜨거운 피를 마신다.
또, 하룻밤 동안 식힌 돼지고기나 오리고기의 국을 차게 먹는다. 또, 납을 달인 물을 마신다.
또, 살아 있는 양의 피를 마신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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