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베니스서도 빛난 이성자 개인전..아픈 이에 희망을 주다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22 15:24

수정 2024.04.22 15:24

이성자 '수액의 진주'. 갤러리현대 제공
이성자 '수액의 진주'. 갤러리현대 제공

【베니스(이탈리아)=유선준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테노바에서 국내 추상미술 1세대 작가 이성자(1918~2009) 회고전 '지구 저편으로'가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오는 11월 24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바르토메우 마리-리바스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기획했고, 이 작가가 활동했던 프랑스와 한국을 제외한 첫 해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 이성자기념사업회, 갤러리현대 공동 주최다.

이번 전시에는 '추상', '여성과 대지', '중복', '음과 양, 초월',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우주' 연작 등 이 작가의 1959년 초기작부터 2008년 후기작까지 2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기하학적 도시 풍경을 자연의 요소와 결합하는 다양한 추상화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만큼 자연과 문명의 결합 도시인 베니스에 걸맞는다는 평이 잇따른다.

주요 작품 가운데 '수액의 진주'는 미술계에 입문하고 6년 만에 이 작가의 개성을 찾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부드럽게 반짝이는 진주 빛깔을 연상케 하는 배경 화면 위로 유기체적인 큰 네모, 작은 네모와 원과 선이 부유하며 운율감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 작업은 작품의 제목까지 작품의 연장선으로 그녀의 초기 추상 회화의 모티브를 이해하는데 있어 주요한 단서가 된다.

이성자 '초월 1월 1'. 갤러리현대 제공
이성자 '초월 1월 1'. 갤러리현대 제공

'초월 1월 1'도 현지에서 주목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나무와 캔버스가 만나고, 캔버스라는 산업물과 나무라는 자연이 만나고, 2차원적인 회화와 3차원적인 조각(나무)이 만난다. 시공간에서 이뤄지는 음과 양의 만남을 이 작가는 '초월'로 본 것이다. 분홍색은 태양이나 남성을, 파란색은 대지나 여성을 의미한다.

나무의 끝은 캔버스를 의도적으로 벗어남으로써 캔버스(회화)를 초월하고 있다. 더욱이 이 나무의 그려진 그림자는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에서 산이 되고, 바다가 되기도 한다.

이성자 '용극의 도시 5월'. 갤러리현대 제공
이성자 '용극의 도시 5월'. 갤러리현대 제공

이밖에 '용극의 도시 5월'에 등장하는 '일무'(一無)는 한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도 다른 모티브나 괘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일무'는 통도사 성파 스님이 이 작가에게 내린 호다.
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결국 우주는 하나고 동시에 무한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전시를 기획한 바르토메우 마리-리바스 전 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의 작품들을 통해 좌절할 듯 하지만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이 작가 역시 아픔이 있었던 만큼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이 작가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파리에 정착한 뒤 고국에 있는 부모와 자식을 그리워하며 작품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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