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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 컨틴전시 플랜] 탄소저감 위한 솔로몬의 지혜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22 19:09

수정 2024.04.22 19:09

에너지정책, 국가미래 좌우
CCUS 기술 전략적 활용을
재정 투입에도 선택과 집중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농경사회에선 물관리(치수)가 국가 백년대계였다. 산업사회부터 에너지 정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처음부터 계획을 잘못 세우면 그 나라의 미래도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권 교체기마다 에너지정책이 호떡 뒤집듯 바뀐다. 지금은 온통 탈원전과 탈원전 폐기 논쟁에 빠져 있다.
탄소중립에 이르는 길도, 에너지믹스(조합)도 수천, 수만 가지의 선택지가 있는데 말이다.

에너지 대계가 바로 섰는지 현시점에서 대점검이 필요하다. 최소 두 가지 정책 가이드라인을 따져볼 때다.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혁신적 비즈니스모델로 육성하는 아이디어와 재원의 선택과 집중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정책의 제도와 기술 면에서 후발주자다. 방어적 자세로 일관하면 선진국의 기술과 자원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만의 친환경 비즈니스모델로 맞대응하려는 파이팅이 요구된다.

화석연료 분야가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 탄소중립을 지키려면 화석연료를 태우는 발전소와 공장을 없애면 그만이다. 그런데 손바닥 뒤집듯 단숨에 이룰 수 없다. 이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을 가장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가 CCUS 기술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관련 기술의 수준과 진척도가 턱없이 기대 이하라는 게 문제다. 소형 설비 기술에 적용 가능한 초보 수준이다. 대형 화력발전소에 직접 적용하려면 한참 멀었다.

1968년 청와대에 신설된 초대 경제수석 출신인 신동식 카본코리아 회장은 CCUS를 활용한 사업 아이디어 도출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92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의욕으로 이 사업에 승부를 걸었다. 신 회장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 탄소배출을 줄이는 물리적 한계에서 틈새시장을 찾았다. 대체에너지를 늘리는 정책을 우선으로 하되, 기존 화석연료 시설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해 없애는 CCUS 기술도 키우자는 것이다.

크게 3단계 비즈니스모델을 갖췄다. CCUS 국산화 기술로 국내 화력발전소와 주요 공단 및 중소형 탄소배출 공장에 포집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를 모아둘 거대한 저장소를 확보하는 게 큰 딜레마다. 신 회장은 국내 조선업 역량을 활용해 해상 포집 저장소 역할을 하는 플랜트를 건조하는 기술을 고안했다. 마지막으로 포집된 탄소를 활용하려는 해외업체에 수출하는 활로가 있다.

물론 이 모델의 사업타당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확실한 건 세계 1위 조선업계의 생태계를 구상한 '한국 조선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 회장이 에너지재생 기술과 조선업 노하우 및 경제활성화를 융합해 짜낸 모델이라는 점이다. 탄소중립에 방어적 전략이 아닌 산업활성화 모델로 접근한 게 눈길을 끈다.

탄소중립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꽉 잡으려면 정부의 지원책도 긴밀해야 한다. 투자가 없는 곳에 성과는 없는 법이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CCUS 기술 상용화 및 산업계 도입을 위해 다양한 세제혜택과 법률 개정 및 연구개발 투자에 과감하게 나섰다. 우리나라도 지난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관련 재원 확보를 위한 기후대응기금이 설치되긴 했다.

그래도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부처별로 나눠먹기식으로 써봐야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철저히 '선택과 집중' 원칙에 입각해 투자효율을 높여야 한다. 기금 지원대상을 직접효과와 간접효과로 명확히 구분, 꼭 필요한 곳에 전략적으로 투입하는 게 옳다.

담대한 친환경정책 목표와 과감한 재정지원을 주도하는 리더십도 절실하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이 '원팀'이 돼야 될까 말까 하는 싸움이다. 특히 자원 희소성 딜레마에 빠진 한국은 에너지 정책에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선진국의 뒤꽁무니만 바라보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벗어나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거듭나는 선도자(First Mover)가 돼야 한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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