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지방 종합병원 봉직의사, 동료에게 폐암 수술 맡겨

노주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06 15:20

수정 2024.05.06 15:20

"반드시 서울 가서 수술 받으라"는 가족들의 강력한 권유 뿌리쳐
온종합병원 폐암수술센터 최필조교수, 성형외과 한봉주과장 수술
수술 후 열흘 만에 환자 진료 재개, 한 과장 "어버이날 최고 선물"
지방 종합병원 봉직의사, 동료에게 폐암 수술 맡겨


[파이낸셜뉴스] 최근 정부 고위공무원이 지방 종합병원의 수술 권유를 뿌리치고 서울 메이저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한 사실을 두고 비난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방 종합병원 봉직의사인 60대 성형외과 의사가 서울 메이저병원에 가지 않고 자신이 일하는 지방병원의 동료의사에게 폐암수술을 받고 현재 진료실로 복귀해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반인 암환자들처럼 무조건 수도권 병원에서의 수술을 강력하게 권하는 가족들을 뿌리치고 "가장 편하고 나를 가장 잘 아는 동료에게 수술 받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현재 우리나라 암환자 수도권 쏠림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다.

'잘 나가는 성형외과 개원의'를 접고 2019년 3월부터 부산 온종합병원 성형센터에서 욕창이나 화상 등을 진료를 해오던 한봉주 과장(68·성형외과전문의)은 지난달 11일 가슴 통증이 심해 같은 병원 폐암수술센터 최필조 센터장(전 동아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을 찾아가 흉부CT 조영검사를 받고 조기 폐암으로 추정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왼쪽 폐 결절의 크기는 2.5㎝로 주치의인 최 센터장은 한 과장에게 수술을 권했다.

지난해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에 새롭게 발생한 암 환자 수는 25만4718명이며, 그 중에서 폐암은 남녀를 합쳐서 2만9960명으로 전체 암 발생의 11.8%로 2위를 차지했다.

폐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아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약 30%로 낮은 편이다.


다행히도 조기 폐암인 한봉주 과장은 주치의 최필조 센터장의 권유에 따라 즉시 수술날짜를 잡고 해외에 사는 자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가족은 곧바로 한 과장에게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수술받을 것을 강권했다.

전공의 사태로 의료현장이 어수선하다고 하지만 선후배들이 많을테니 수술할 서울 대형병원과 의사를 소개받으라고 졸랐다.

가족들의 끈질긴 권유에도 현재 근무하는 병원의 동료에게 수술 받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나는 여기가 편하다. 이 병원에도 폐암수술을 잘 하는 교수 출신 의사가 있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거꾸로 가족들을 설득했다.

가족들은 한 과장의 집요한 설명에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주치의 '최필조 교수'에 대한 정보들을 접했다.

한봉주 과장보다 1년 늦은 2020년 3월부터 온종합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최필조 센터장은 동아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주임 교수 출신으로 흉강내시경을 통한 폐암수술을 잇따라 성공시켜 왔다.

흉강내시경을 이용한 폐암 수술을 성공한 병원은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지역 종합병원으로서는 온종합병원이 처음이라고 한다.

최필조 센터장은 흉강경 수술과 로봇수술을 통해 국내에서 폐암과 흉부종양 분야의 치료를 선구적으로 이끌고 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4,000례가 넘는 흉부질환 수술을 시행한 폐암 수술명의로 평가받고 있다. 최 센터장은 부산지역 유력 일간지에서 선정한 '의사가 추천하는 흉부외과 명의(Best Doctor in Busan)'에 뽑히기도 했다.

결국 한 과장의 가족들은 '현재 근무하는 지방 종합병원의 동료의사에게 수술 받겠다'는 가장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주치의 최필조 센터장은 지난달 23일 3시간 30분에 걸친 폐 분절 절제술로 한봉주 과장의 암세포를 완전히 떼어냈다. 조직 검사 결과, 한 과장은 침윤성 비점액성 선암종으로 확인됐다.

주말인 지난 4일 온종합병원 성형센터 진료실에서 만난 한봉주 과장은 "지난 2021년 1월 병원 검진에서 폐에 작은 결절에 확인됐고, 평소 폐암명의라고 알고 있던 동료 의사 최필조 센터장을 통해 줄곧 이를 관찰해오다 이번에 조기 폐암으로 추정되면서 곧바로 수술하게 됐다"며 "암이라고 무조건 서울로 가는 것은 옳지 않고, 지역의 대학병원은 물론 중견종합병원에서도 각종 암 치료가 가능한 교수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고 일반인 암환자들의 수도권 쏠림을 재고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 이번에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일을 알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한 과장은 특히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동료의사로부터 최고의 선물을 받게 됐다"고 끝까지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동료의 암을 수술한 주치의 최필조 센터장은 "다행히도 한 과장은 조기 암으로 확인돼 앞으로 재발 가능성은 낮다"면서 "폐암은 자각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쉽지 않으므로 남녀나 흡연 여부 상관없이 해마다 정기검진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