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이은 사업 실패에 120억 빚더미…행복해진 비결은요" [인생은 아름다워②]

김주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09 17:38

수정 2024.05.10 06:37

시니어모델 김용훈 씨의 '인생 스토리'
"인생의 후반전, 나를 가꾸는 마음으로"
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시니어모델로 '인생 2모작'을 사는 김용훈씨
시니어모델로 '인생 2모작'을 사는 김용훈씨

그는 돈이 벌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의 명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잘 나가는 기업에 입사해 7년의 직장생활을 하며 괜찮은 삶을 살았지만, 돌연 모든 것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리곤 사업에 실패했다. 30대의 나이에 120억원이라는 빚을 지게 됐고 완전히 파산했다. 이후 운 좋게 다시 회사에 입사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지만, 형편이 나아지자 또, 사업에 손을 댔다. 그리고 또 실패했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그는, 그 시절의 자신을 '잡히지 않는 나비'를 쫓던 청년이었다고 말한다. 충족되지 않은 마음 속에서 타오르던 정체불명의 열망과 욕망이 자신을 괴롭혔고 평화로운 일상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이간질했다.

시니어모델 김용훈 씨의 삶은 돈과 권력이라는, 어쩌면 허황된 욕망을 좇는 파도치는 풍랑 속 계속되는 방황이었다.

한번은 IMF, 한번은 리먼사태... 두번의 좌절

"골프는 아직도 칠 줄 모릅니다. 골프를 칠 만한 상황이 찾아왔다 하면 곧바로 골프채도 살 수 없는 형편이 됐거든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시니어 연기자 전문 소속사에서 만난 김용훈 씨는 젊은 날을 회상하며 털털하게 웃었다. 따지고 보면 꼭 그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가죽 의류 무역회사는 국내에 100명의 직원을 두고 매출액 200억원을 달성할 만큼 크게 성장했고, 한중수교 이전 중국에 공장을 설립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하지만 목표했던 성공을 목전에 두고 그가 바랐던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던 그 때, 하필이면 IMF사태(1997년 외환 위기)가 터졌다.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 제 사정을 누가 봐주겠어요. 은행은 차입금 회수에 들어갔고, 투자자들도 독촉하니 회사 내실이 흐트러졌어요. 내실이 무너지니 해외 바이어들의 컴플레인도 증가하고 그러니 수출액은 줄어들고…인건비도 밀린 데다, 결국 회사는 도산했습니다. 제 앞에 빚이 당시 돈으로 120억원이었어요. 신용불량자가 됐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1년 가까이 원치 않던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지인이었다. 김 씨와 막역했던 그는 김 씨에게 부사장 자리를 제안했다. 이에 김 씨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고 확장시켰던 능력을 바탕으로 업무에 매진했고, 거액의 빚도 차근차근 갚아나갔다. 그렇게 김 씨의 삶도 다시금 정상화되는 듯 보였다.

"욕망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제 능력을 힘에 업고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더군요. 결국 다시 사업해보고 싶다며 또 한 번 그만뒀습니다. 이번엔 바이크 용품 수출입 회사를 차렸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영업이익도 순수익도 천천히 증가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더군요. 버텨보려 정말 아등바등했는데, 결국 접어야 할 상황이 됐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팔자' 탓을 하기엔 애매하다. 김 씨는 어쨌든 또 실패했다.

인생의 후반전, 시니어 모델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다

시니어모델 김용훈씨가 무대에 선 모습 /사진=김용훈 제공
시니어모델 김용훈씨가 무대에 선 모습 /사진=김용훈 제공

그러던 김 씨가 TV에 등장한 건 2020년의 일이다. 시니어(Senior) 스타일의 아이콘을 찾는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에 '강서구 감우성'으로 도전장을 내밀며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이번에는 돈을 더 벌겠다던지, 더 큰 성공을 하겠다는 '욕망'과는 관계 없었다. 김 씨를 움직인 건 다름 아닌 그의 딸이었다.

"막내 딸이 어느 날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처음에는 질색 팔색을 했습니다. 평생 무역업만 하던 사람이 모델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사람들 앞에 설 생각하니 쑥스럽고 민망했죠. 딸의 성화에 일단 지원을 하기는 했는데…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2차까지 넘어가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어색하고 자신도 없는 와중에, 매번 살아남고 있는 거예요. 결국 4개월을 전부 출연했고, 최종 멤버로까지 올라갔습니다"

MBN '오래살고볼일'에 출연했던 당시 김 씨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살아남는 것을 넘어 시청자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훤칠한 키와 외모,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으로 네티즌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긴 것이다. 이후 2022년에는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 더 그레이스'에 출연을 했고, 현재 소속사인 제이액터스로부터 제안을 받아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김용훈의 '모델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45세 이후로 시니어 모델 활동에 나서는 분들도 있고요, 본업을 갖고 계시다 전환을 하시는 분도, 본업과 더불어 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처럼, 인생의 고난을 겪은 후 어쩌다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죠. 단순히 '늙은 후' 모델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이 아닌, '인생의 후반전'에서 모델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꾸준한 활동으로 '2021 제3회 KMA 시니어모델 선발대회' 대상을 수상한 김 씨는 현재 모델 활동에 국한하지 않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단편 영화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까지 영역을 넓혀 활동하고 있다.

"'강서구 감우성'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강서구 김용훈'이 되고 싶습니다. 나아가 '제2의 김용훈', '제3의 김용훈'이 계속해서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잡히지 않는 나비'를 쫓던 나, 이제는 스스로가 꽃밭이 되고 싶다"

서울 서초구 제이액터스 사무실에서 만난 시니어모델 김용훈씨. 그는 고난 많았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이젠 과한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내 마음 안에 성취가 더 가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편안한 얼굴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사진=손다영 에디터
서울 서초구 제이액터스 사무실에서 만난 시니어모델 김용훈씨. 그는 고난 많았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이젠 과한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내 마음 안에 성취가 더 가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편안한 얼굴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사진=손다영 에디터

모델 활동을 시작한 이후 김 씨는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을 하며 몸을 가꾸고 있다고 한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졌다. 받아들이고, 순응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언제 다시 찾아 올지 모를 위기와 실패에 대응하는 마음으로 매일에 임하고 있다.

"이상하죠? 젊었을 때는 돈과 권력을 쟁취해야만 마음 속의 갈증이 해소될 거라 생각했는데, 유명하지 않아도 때로는 적은 출연료를 받아도 과한 욕심이 생기지 않아요. 무대에 설 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할 때 '살아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까지 합니다. '돈만 갖고 사는 게 아니구나. 삶에서는 내 마음 안에서의 성취가 더 가치있구나. 그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구나'라고요"

물불 안 가리고 사업에 뛰어들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잡히지 않는 나비'를 쫓았다고 비유한 김 씨는, 나비를 좇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일은 '자기자신을 꽃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의 꽃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순간 나비들은 자연스레 그 향기를 향해 날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에 김 씨는 이렇게 답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미와 같죠. 가시도 돋혔기에 함부로 움켜쥐려했다 상처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침내 꽃을 피운 그 모습이 아주 멋지잖아요"

김 씨의 꽃밭에는 가시 돋힌 장미도 피었을 것이며 시련과 고난을 견뎌낸 후 천천히 꽃망울을 피우는 '늦깍이 꽃들'도 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꽃밭에는 몇 마리의 나비가 날아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다시 비가 내리고 차가운 겨울이 찾아올 지도 모른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과거 삶이 그러했 듯.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래서 아름답다.

시니어모델로 '인생 2모작'을 사는 김용훈씨 /사진=김용훈 제공
시니어모델로 '인생 2모작'을 사는 김용훈씨 /사진=김용훈 제공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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