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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양곡법에 난감한 정부 "쌀 과잉생산 부추겨 연 3兆 낭비"

이창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15 18:37

수정 2024.05.15 18:37

野, 양곡법·농안법 28일 처리 예고
법 손봤지만 남는쌀 매입부담 여전
정부 "쏠림품목 가격 불안해질 것"
쌀 감축 목표와도 정면으로 배치
제2양곡법에 난감한 정부 "쌀 과잉생산 부추겨 연 3兆 낭비"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안(입법거부권) '제 1호' 대상이었던 양곡관리법이 다시 21대 국회 마지막 숙제로 돌아왔다. 야당은 '남는 쌀'의 매입 의무화와 더불어 주요 농산물까지 가격 안정 대상에 포함해 마지막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를 강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정 압박을 거세게 받고 있는 정부로서는 강제 매입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는 반대로 '쌀 생산 감축'을 목표로 두고 있어 정 반대의 효과를 내는 양곡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5일 정부 및 국회에 따르면 야당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양곡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의 개정안을 강행 처리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달에도 야당은 단독으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열고 두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야당이 제시하는 개정안은 모두 쌀과 주요 농산물이 과잉 생산될 경우 일정 가격 밖의 물량을 정부가 의무로 사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야당은 지난해 거부권 대상이 된 개정안과 달리 의무 매입 조항을 삭제했다는 입장이지만, 개정안에서도 정부의 판단을 심의위원회의 결정 사항으로 남겨놨다. 심의위원회에서 목표가격을 정하고 나면 그 밑의 물량 매입을 정부가 거부할 수 없는 셈으로 사실상 의무 매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농식품부는 송미령 장관을 필두로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송 장관은 그간 "가격·편의성이 높은 품목으로 생산이 쏠릴 것"이라며 "가격안정법이라고 하니 가격을 떨어지게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오히려 특정 품목 가격은 더 불안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쌀 재배 농가의 작물 전환을 추진 중인 농식품부는 양곡법과 정 반대의 위치에 놓여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국민 소비량보다 더 많은 쌀을 생산하는 '자급률 100%' 이상의 국가여서다.

농식품부는 논에 자급률이 낮은 주요 작물을 심으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 등을 통해 농가의 자체적인 쌀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전략작물직불제 등 정부 정책으로 감축된 벼 재배 면적은 누적 2만 8945㏊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소비량 대비 초과 생산된 쌀은 2.6%(9만5000t) 수준으로 양곡법 기준에 빗대어봐도 낮은 수준까지 내려왔다. 농식품부는 쌀 매입의 의무화될 경우 농가가 다시 쌀 생산으로 돌아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논 농사는 기계화율이 99.3%에 이를 정도로 편의성이 높다. 정부가 농가 수익의 하방을 법으로 보장할 경우 농가의 작물 전환 동기는 더 적어진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밭농업 기계화율은 63.3%에 머무르는 중이다. 일손이 특히 많이 드는 파종·정식은 12.6%, 수확 작업은 32.4%에 불과하다. 고령화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진행 중인 농촌으로서는 이미 인력문제만으로도 논 농사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이같은 쌀 생산 수요를 더 고착시킬 우려도 높다.

지난해 경기 침체로 올해도 세수 압박을 거세게 받고 있는 재정도 문제다. 농식품부 추산에 따르면 2030년에는 쌀 매입에만 2조7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보관비용을 합치면 5년 뒤부터 매년 3조원이 넘는 재정을 써야 한다는 계산이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정부가 특정 가격을 지지한다는 것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생산을 유인한다는 것"이라며 "소비 수준에 맞춰 적정 수준으로 생산을 따라 줄이는 것이 수급 관리의 목표"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쌀 가격을 방어하는 것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할 소지도 있다고 봤다.
서 원장은 "가격 지지를 위해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매입을 의무화하면 WTO의 보조금 지급 기준을 쉽게 뛰어넘을 것"이라며 "위반을 확인한 뒤에야 개정을 하려고 하면 정책적 혼란이 가중될 것이고, 그대로 유지할 경우 무역 보복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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