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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갑작스런 설사에 OOO 가루를 먹었더니 바로 그쳤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25 06:00

수정 2024.05.26 15:41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는 질경이를 차전(車前)(그림 왼쪽)이라고 해서 그려 놓고 있다. 질경이 씨를 차전자(車前子)라고 하는데 소변을 이롭게 하면서 동시에 설사를 멎게 한다.
<본초강목> 에는 질경이를 차전(車前)(그림 왼쪽)이라고 해서 그려 놓고 있다. 질경이 씨를 차전자(車前子)라고 하는데 소변을 이롭게 하면서 동시에 설사를 멎게 한다.


옛날 북송시대에 구양수라는 벼슬아치가 있었다.
구양수는 한림원학사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다. 구양수는 자존심이 세고 자만심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 일쑤였다. 특히 자신의 삶은 일반 평민들과는 다르다고 여겼다.

구양수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설사병을 앓았다. 설사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소변량이 줄었고,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면 모두 설사를 하는 바람에 마치 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았다.

구양수는 자신의 설사병을 어의에게 치료를 맡겼다. 그러나 어의가 첩약도 써보고 탕약도 써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벌써 설사를 한 지 수일이 지났고 뒤가 항상 눅눅하고 언제라도 설사가 날 것 같아서 시간에 맞춰서 궁에 입궐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날 구양수의 부인이 “제가 하녀로부터 듣기로 시장에 설사에 효과가 좋은 약을 가지고 있는 상인이 있다고 합니다. 1첩의 양이 쾌 비싸지만 매우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 상인에게 처방을 구해서 복용해 보시는 것은 어떠실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구양수는 “우리 벼슬아치의 오장육부는 시장 잡상인들의 장부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요. 그러니 그 약을 사다가 복용한다고 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요. 그 약은 평민들에게나 쓰는 약이 아니겠소. 어의가 치료를 했는데도 낫지 않고 있는 것을 어찌 시장의 떠도는 처방에 좋아질 수 있겠소. 나는 계속 어의에게 다시 처방을 받아서 더 복용해 보겠으니 그리 아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의의 처방을 계속 복용해 봐도 설사는 멎지 않았다. 급기야 부인은 구양수 몰래 하인을 시켜서 시장 상인에 처방약을 구해 오도록 했다. 약은 가루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양수 모르게 먹일 방법이 없다.

그날 저녁 구양수는 하녀에게 탕약을 달여서 올리도록 했다. 부인은 하녀가 탕약을 달이고 있을 때 시장에서 구해 온 가루약을 탕약에 옹기 약탕기에 넣어 함께 섞었다. 희한하게도 구양수는 그 탕약을 한번 복용하고 나서 설사가 나았다.

구양수는 부인에게 “어의의 처방이 드디어 효과가 있소. 내 말대로 시장에서 처방을 사지 않은 것을 다행이구려.”라고 했다.

그러자 부인은 사실대로 말했다. “대감께서 방금 전에 복용하신 어의의 처방에는 이미 시장에서 구해 온 처방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효과는 지금까지 계속 똑같이 복용해 왔지만 효과가 없었던 어의의 처방때문이 아니라 한번 복용하고서도 좋아진 시장 상인의 처방 때문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구양수는 궁에 입궐을 해서 그 시장 상인을 불러 오도록 했다. 시장 상인이 오자 “너는 내 설사에 무엇을 처방한 것이냐?”라고 물었다.

시장 상인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서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벌벌 떨면서 “차전자(車前子)를 가루 내서 드린 것입니다.”라고 했다.

구양수는 “차전자가 무엇이냐? 귀한 약재 같은데, 어디서 구한 것이냐?”라고 물었다.

상인은 “차전자는 그냥 길가에 나는 질경이풀의 씨앗입니다. 질경이를 차전(車前)이라고 하는데, 길에 소가 끄는 마차가 다니는 길가에 많이 나서 붙여진 것입니다. 저희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설사가 나면 차전자 가루 2돈을 미음에 타서 먹는 것이 가정 비법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상인은 별것도 아닌 것을 돈을 많이 받고 팔아넘긴 것이 들통 난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사실 효과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옆에는 어의도 와 있었다. 구양수는 어의를 쳐다보았다. 차전자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는 듯했다.

그러자 어의가 “차전자는 수도(水道)를 통리시키면서 기를 요동하지 않게 하는데, 수도가 통리되면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구분되어 맑은 기운은 흡수되어 소변으로 나가고 탁한 기운은 단단한 대변으로만 남게 되니 곡장(穀藏, 대장)에서 넘쳐나는 설사가 저절로 멎게 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구양수가 어의에게 “어의도 차전자를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어의는 왜 차전자를 처방하지 않고 나에게 효과가 없는 쓸데없는 처방만 한 것인가?”하고 물었다.

어의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별말이 없었다. 사실 어의 또한 차전자의 전반적인 효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방은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서 군신좌사(君臣佐使)에 맞도록 처방을 해야 의원의 노릇이라고 여긴 것이다. 어의는 설사에 차전자 한가지만 처방하는 것은 처방이 아니라 민간요법으로 생각했다.

상인은 구양수와 어의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구양수는 상인에게 “그 차전자 가루가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내가 너에게 상을 내리마.”라고 했다. 상인은 어이가 없게도 돈을 더 받아서 물러났다.

구양수는 어의에게 “차전자에 대해 더 알고 싶소.”하고 물었다. 어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차전자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차전자는 맛은 달고 짜며 성질은 차고 독이 없습니다. 수도(水道)를 통리시켜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소변이 방울져 나오거나 소변이 돌에 막혀서 잘 나오지 않는 경우에도 복용하면 소변에서 돌이 빠져나오면서 소변이 시원해집니다. 그리고 남성들의 정력에도 좋고 음을 강하게 하여 정(精)을 증가시키고 자식을 갖게 하거나, 눈이 밝아지고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서며 아픈 증상을 치료합니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능도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의서에 적혀 있는 차전자의 모든 효능을 읊었다.

그러자 구양수는 “그럼 이제 설사가 멎었어도 평소에 소변이 시원하지 않으니 차전자 가루를 먹으면 좋겠소. 그리고 남자들의 정력도 좋다니 더할 나위 없겠구려.”라고 했다.

차전자는 오자연종환(五子衍宗丸)에도 들어가는데, 오자연종환은 남성의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처방으로 구기자, 복분자, 토사자, 오미자, 차전자 등 다섯가지 씨앗을 환으로 만들어진 처방이다.

궁의 약방으로 돌아온 어의는 의서의 설사(泄瀉) 편을 펼쳤다. ‘설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장부에 따라서 위설(胃泄), 비설(脾泄), 대장설(大腸泄), 소장설(小腸泄), 신설(腎泄)이 있다. 또한 풍(風), 한(寒), 서(暑), 습(濕), 조(燥), 화(火)에 따라 원인이 다르니 그 치료법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니 한가지 약재로 모든 설사를 치료할 수는 없다.'라고 쓰여 있었다.

어의는 많은 경험이 있어서 시장 상인처럼 한가지 약재로 모든 설사가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질설사의 경우는 무작정 설사를 멎게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한 병증을 봐 왔던 터라 실패한 경우도 많아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꿩잡는 것이 매라고 구양수의 설사를 치료하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어의는 "한평생 의서만 읽고서 명의들의 처방만을 흉내 내려고 했던 나보다 의서 한 권 읽지 않았던 시장 상인의 단방약이 더 나을 수도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 제목의 ○○○는 ‘차전자(車前子)’입니다. 차전자는 바로 질경이 씨앗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증류본초> 治瀉歐陽文忠公嘗得暴下, 國醫不得愈. 夫人云, 市人有此藥, 三文一貼甚效. 公曰, 吾輩藏腑, 與市人不同, 不可服. 夫人買之, 以國醫藥雜進之, 一服而愈. 後公知之, 召賣藥者, 厚遺之, 問其方, 久之乃肯傳, 但用車前子一味爲末, 米飮下二錢匕. 云此藥利水道而不動氣, 水道利則淸濁分, 穀藏自止矣. (설사를 치료함. 구양문충공이 갑작스런 설사가 났는데, 어의가 치료해 보아도 낫지 않았다. 그의 부인이 시장 사람에게 이 병에 대한 약이 있는데, 1첩에 3문인데 매우 효과가 좋다고 하자, 구양공은 “우리의 오장육부는 시장 사람들과 다르니 복용할 수 없소.”라고 하였다. 부인이 구입하고서는 어의가 처방한 약과 섞어 올렸는데, 한 번 복용하자 나았다. 후에 공이 그것을 알고는 약을 판매한 자를 불러다 후하게 선물을 주고 그 처방을 물으니, 한참 뒤에야 전해 주기를 “차전자 한 가지만 가루 내고 미음으로 2돈 술을 복용하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이 약은 수도를 통리시키면서 기를 요동하지 않게 하는데, 수도가 통리되면 청탁이 구분되어 곡장이 저절로 멎게 된다고 한다.)
○ 車前子. 味甘鹹, 寒, 無毒. 主氣癃, 止痛, 利水道小便, 除濕痺, 男子傷中, 女子淋瀝, 不欲食, 養肺, 強陰益精, 令人有子, 明目療赤痛. 久服輕身耐老. (차전자. 맛은 달고 짜며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기륭을 주치하거나, 통증을 멎게 하거나, 수도를 통리시켜 소변을 잘 나오게 하거나, 습비를 제거하거나, 남성의 속이 상한 증상, 여성의 임병, 입맛이 없는 증상 등을 치료하거나, 폐를 기르거나, 음을 강하게 하여 정을 증가시키고 자식을 갖게 하거나, 눈이 밝아지고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서며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노화를 방지한다.)
<동의보감> ○ 車前子. 性寒一云平, 味甘醎, 無毒. 主氣癃, 通五淋, 利水道, 通小便淋澁. 明目, 能去肝中風熱, 毒風衝眼, 赤痛障瞖. (차전자. 성질이 차고 평하다고도 한다. 맛은 달고 짜며 독이 없다. 주로 기륭에 쓰고 오림에 두루 쓴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소변이 찔끔찔끔 나오는 것을 통하게 한다. 눈을 밝게 하고, 간의 풍열과 독풍이 눈을 쳐서 눈이 붉고 아픈 것, 장예를 없앤다.
)
○ 車前子. 治一切泄瀉. 炒爲末, 空心, 取二錢, 米飮調下, 最妙. 或水煎服, 亦良. (차전자. 모든 설사를 치료한다. 볶아서 가루를 내고 2돈씩 미음에 타서 빈속에 먹으면 가장 효과가 좋다.
물에 달여 먹어도 역시 좋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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