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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도덕 무너지면 포퓰리즘이 춤춘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21 18:26

수정 2024.05.21 21:24

부도덕 후보 다수 등원한
22대 국회 협치 실패 때
선심경쟁무대 전락 우려
구본영 논설고문
구본영 논설고문
4·10 총선 이후 협치가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여당이 참패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이후 첫 영수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협치의 꽃이 활짝 피리라 보기엔 싹이 노랗다. 거야는 채 상병 특검 등으로 용산을 압박 중이다. 민주당 초선 당선자 71명은 22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천막농성'에 들어간 판이다.

이렇듯 협치 성공 가능성이 어두운 이유는? 우선 지난 2년간 야권이 협치에 응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지금도 '대장동 의혹' 등 7개 사건 10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와 민주당이 사법 리스크 '방탄'에 올인하거나 들러리 설 수밖에 없는 입지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더욱이 총선을 통해 더 기울어진 정치지형도 비관적 전망을 낳게 한다. 192석 거야가 108석 소여를 협치의 상대로 받아주기보다 폭주할 공산이 더 커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윤 대통령에게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면서 대놓고 탄핵을 거론했다. 즉 "2016년에는 야권 4당을 합쳐 170석밖에 없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의결 때는 234표나 찬성이 나왔다"며 현 여당의 분열까지 부추기면서다.

이처럼 야권이 막 나가는 데는 나름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민심이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심판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총선 이후 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24%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야권도 착각해선 곤란하다. 국민이 야당이 예뻐서 압도적 의석을 몰아준 게 아니니 말이다.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67석을 더 얻었지만 양당 득표율 차이는 5.4%p에 불과했다. 총선 후 첫 갤럽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이재명의 지지율도 23%에 그쳤지 않나.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간 각종 국정 혼선을 빚은 건 사실이다. '영부인 리스크' 관리 실패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같은 건 용산의 자책골이라 치자. 민주당의 비토크라시(극단적 파당정치)도 이에 한몫했다. 윤 정부의 노동·연금 분야 등 구조개혁에 손잡긴커녕 양곡관리법과 민주화유공자법 등 그들의 어젠다만 밀어붙이면서다.

윤 정부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양상은 더 악화될 게 뻔하다. 윤 대통령으로선 탄핵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킨 여당 의석으론 구조개혁은 고사하고 관료에 기대 일상적 행정을 꾸려가기도 벅찰 법하다. '도덕정치'가 파산한 총선 결과는 더 불길하다. 윤 정권 심판론에 묻혀 지역구나 야당 비례대표로 국민의 평균 도덕성에도 훨씬 못 미치는 인물들이 대거 당선되면서다. 조국혁신당은 조국 대표를 포함해 확정판결을 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는 피고인 신분 당선자가 여럿이다.

그러니 심판당한 여권이든, 압승한 야권이든 인기영합 경쟁에 몰입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정책적으로 무능한 데다 도덕성마저 없으니 피차 차기 대선까지 다른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없어서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주의와 같은, 결국 국민적 불행으로 이어질 '포퓰리즘 수렁'에 빠져들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벌써 그럴 조짐이 보인다. 민주당은 전 국민 대상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추진하겠단다. 정부의 예산 편성·집행권을 무시하고 13조원 예산을 풀도록 '처분적 법률'을 제정해서다. 하지만 총선에서 이겼다고 야당이 정부 예산으로 국민의 환심을 얻으려 한 사례는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에서도 없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올 1·4분기 경제성장률 선두권이었다.
물가를 염려해야 할 국면이다. 그런데도 재벌과 노숙자를 가리지 않고 25만원씩 지급한다고? 눈 밝은 국민이 도덕이 무너진 정치판을 비집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신호탄으로 보기 때문일까. 아직은 이에 부정적인 여론이 적잖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몰라도 25만원 지원금 입법에는 거부권을 확실히 행사해야 할 이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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