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이혼 후에도 혼인무효 가능" 40년 만에 바뀐 대법원 판례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23 15:33

수정 2024.05.23 15:33

"혼인 무효와 이혼은 법률적 실익이 달라"
"혼인 무효가 되면 그것을 전제로 가족관계등록부 등 수많은 법률관계도 해소될 수 있어"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사진=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이미 이혼했더라도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새로운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혼인 무효와 이혼은 다르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에게 법률적 실익이 있다는 취지다. 이로써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해소됐다면 혼인을 무효로 할 법률적 이익이 없다는 지난 1984년의 대법원 판례가 40년 만에 바뀌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A씨가 전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 확인 청구 상고심에서 원심의 각하 판결을 대법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1년 12월경 결혼해 2004년 10월 조정 이혼했다. 이후 A씨는 혼인 신고 당시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며 혼인을 무효로 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민법 815조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었거나 근친혼일 경우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1984년부터 이혼 부부의 혼인은 사후에 무효로 돌릴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혼을 통해 '이미' 혼인 관계가 해소됐기 때문에 혼인무효 확인의 실익이 없다는 취지다. 이 같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며 혼인 관계가 해소됐더라도 혼인 무효 확인을 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지만 혼인 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됐더라도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이유에서다. 즉 두 관계의 차이가 있는 만큼, 혼인 무효를 통한 실익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됐다면 기존 혼인 관계는 과거의 법률관계가 되지만 혼인 관계는 그것을 전제로 수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일일이 효력의 확인을 구하는 절차를 반복하는 것보다 과거의 법률관계인 혼인 관계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편이 관련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로 인해 이미 해소된 혼인 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경우, 현재 법률관계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개별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며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 등으로 불이익을 받아 온 당사자의 실질적인 권리구제가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