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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 칼럼] 한일중 정상회의 소구력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03 20:05

수정 2024.06.03 20:05

지난달 4년 반 만에 개최
3국 소통 복원 평가받아
한국, 실리적 중재 기대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친구 중에서 가장 친한 '절친'이 있고 그냥 친구가 있다. 상호 신뢰가 높고 교류가 많을수록 절친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1순위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한 번 절친이 영원한 절친이란 법도 없다. 서로간 오해와 갈등으로 금이 가면 죽마고우라도 돌아선다. 국가 간 외교 관계도 다를 바 없다.
최근 폐막한 '한일중 정상회의'가 딱 그렇다.

올해 한국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주목할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국가 표기를 둘러싼 혼선이 대표적이다. 관례적으로 '한중일'로 표기해왔던 관행이 올해 '한일중'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강했다. 애초부터 각국은 편의에 따라 국가명을 적는 게 관례다. 자기 나라와 신뢰 및 교류 면에서 더 중요한 국가를 순서에 따라 나열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올해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한일중, 중국은 중일한, 일본은 일중한으로 표기했다. 이 표기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보이는 건 상대국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이다. 삼각관계 관점에서 일본은 모든 국가로부터 절친으로 분류된다. 이와 달리 한국은 모든 국가로부터 가장 먼 친구로 분류됐다. 이는 동북아의 외교, 안보, 경제 면에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하고 그들끼리 거래와 협상할 건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일본과 가까워지면서 관례적으로 표기하던 '한중일'이 이번엔 '한일중'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일본도 '일한중'으로 표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건 우리만의 생각일 뿐이다.

행사 명칭이 정상회의인데 중국은 시진핑 주석 대신 리창 총리가 참석해 국가별 정상 위상이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3국 정상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계기로 지난 2008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 총리, 아소 다로 총리가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중국은 지금에 비해 주석과 총리의 역할 분담이 명확했기 때문에 3국 정상회의에 중국 총리의 참석이 자연스러웠다. 원칙으로 따지면 애초 만들었던 정상회의 구성방식에 토를 달기 힘들다. 물론 그간 시대 변화를 반영하면 수정의 여지가 있지만 3국 간 합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생각이 다른 국가들이 모인 지역에 공동체를 만들고 활성화하는 건 결코 간단치 않다. 현상유지를 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유럽연합(EU)이다. EU의 입법기관인 유럽의회를 구성하는 의원을 선출하는 제10대 유럽의회 선거가 오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실시된다. 이번 선거는 영국의 EU 탈퇴 이후 치러지는 첫 선거다. EU는 출범 취지와 달리 안보와 산업 경쟁력 전반에서 회원국 간 갈등이 가속화되면서 총체적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위기감은 유럽 전역에 몰아친 극우 돌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EU 공동 이익보다 자국 이기주의로 회귀하려는 관성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자간 외교에서 원칙은 실용을 이길 수 없다. 특정 국가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원칙도 무너지는 게 외교의 본성이다. 한일중 정상회의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3국 정상회의에 대해 회의론 혹은 무용론이 나오곤 한다. 그러나 3국 정상회의는 없는 것보다 존치하는 게 훨씬 낫다. 3국 정상회의는 올해로 25주년이 됐다. 그동안 3국 관계 영향으로 자주 중단돼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올해 회의도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이후 4년5개월 만에 열린 것이다.

다행히 중국과 일본의 국력이 강하지만 3국 간 협의기구는 한국에 적을 두고 있다.
중국에서 열린 2차 정상회의 당시 세 나라가 상설 사무국 설립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2011년에 정부 간 국제기구인 '3국 협력 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한 바 있다.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을 이끌 협의체를 활성화하는 데 한국이 실리적 중재자로 나설 환경이 조성돼 있다.
3국 정상회의를 활성화해 우리의 국익을 최적화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들의 판단에 달렸을 뿐이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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