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특별 기고] 기술평가, 혁신의 연결고리 되기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30 18:58

수정 2024.06.30 18:59

이재필 기술보증기금 이사
이재필 기술보증기금 이사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금융 시스템 중에는 데이터 개방과 협업을 통해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을 혁신한 사례가 다수 있다.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트래블 카드는 별도의 환전 없이도 전 세계 어디서든 현지 통화로 결제가 가능하게 만든 카드다. 트래블 카드를 유행시킨 회사는 대형 금융사가 아닌 국내 한 스타트업이다. 많은 절차가 필요했던 기존 환전 시스템을 자체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단순화시켜 혁신을 만들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인프라의 개방과 협업을 통해 가능해진 결과다.

개방과 협업을 통한 혁신은 금융뿐만 아니라 신용평가 분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용평가의 기원은 1909년 미국의 출판사 무디스를 그 시초로 본다. 필자는 무디스가 현재 세계 최대의 신용평가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원동력을 데이터와 글로벌 협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무디스는 정부, 회사, 은행의 주식과 채권에 대한 통계를 모아 '무디스의 산업 및 증권 매뉴얼(Moody's Manual of Industrial and Miscellaneous Securities)'이라는 잡지로 출판했다. 이 잡지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1920년대 경제 대공황이었다. 무디스가 투자적격등급으로 평가한 회사들만 경제 침체에서 살아남으면서 데이터 기반 통계의 힘을 입증한 것이다.

또 하나는 글로벌 협업이다.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 대륙의 리서치 회사와 폭넓게 협업하면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장하고 세계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접근성을 넓혔다.

필자는 기술보증기금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전통적 금융방식이, 스타트업과 연구개발(R&D) 집약기업에 적용이 어려운 점을 여러 번 목격했다.

이에 기보는 1997년 기술평가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고 2005년 최초로 '데이터' 기반의 기술평가시스템을 출시했다. 바젤 기준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없는 상황에서 평가시스템의 신뢰성을 검증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보는 유럽집행위원회(EC)와 같은 국제기구와의 긴밀한 연구 협력을 통해 평가시스템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발전시켜 왔다. 특히, 유럽투자은행(EIB)과의 협력은 기보의 기술평가 시스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2년 유럽혁신포럼 보고서에서는 기보의 기술평가시스템이 상세히 다루어졌고, 이후 아일랜드 더블린 EU 총회와 룩셈부르크 EIB 본사에서의 초청 강의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보는 EIB와 공동파일럿 테스트, 유럽형 기술평가모형개발 프로젝트 수행 등 유럽의 주요 금융기관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기보는 올해 6월,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 도약전략'의 1호 후속조치로 개방형 기술평가시스템인 K-TOP을 출시했다.
기보가 30년 가까이 쌓아온 데이터를 통해 기업은 쉽고 간단하게 기술 역량을 자가진단할 수 있고, 금융기관 등 지원 기관은 기업 선별을 통해 투자·대출·정책 지원 사업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기술평가는 이제 단순한 평가의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데이터 개방과 글로벌 협력을 통해 기술평가 노하우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더 많은 기업들이 기술 혁신의 주역이 되고, 기술평가의 국가간 비교가능성이 높아져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에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재필 기술보증기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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