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한복과 비쉬반카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10 18:32

수정 2024.07.10 18:37

정인홍 정치부장·정책부문장
정인홍 정치부장·정책부문장
얼마 전 국내 한 민간단체가 주최한 한복모델 선발대회에 초청을 받았다. 대회의 목적은 우리 전통의상인 한복의 세계화다. 매년 프랑스, 태국 등 세계 여러 국가와 국내 주요 도시에서 예선을 거친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자수가 그려진 예쁜 색감의 한복을 입고 자태를 뽐냈다. 참가자들 면면도 다양하다. 외국인을 비롯해 시니어, 주니어 할 것 없이 가족, 친구 등도 참여해 한복 고유의 멋을 널리 알리는 한바탕 축제의 장(場)이었다.
한복이 주는 화려함과 단아함은 단연 세계 최고다. 비록 참가자들이 전문적인 모델이 아니기에 표정이나 춤사위에서 어색함이 묻어났지만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만큼은 프로급이었다.

유명 디자이너 이상봉씨도 허리디스크 수술로 한달가량 입원해 있다가 만사 제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제나 저제나 참가자들의 경연을 기다리던 필자의 눈에 생경한 옷이 눈에 박혔다. 바로 우크라이나의 유명 디자이너 옥사나 플로네츠가 직접 만든 전통 민족의상인 '비쉬반카'(Vyshyvanka) 패션쇼였다. 디자이너는 전쟁통에 폴란드까지 육로로 이동해 어렵사리 한국에 왔다. 한복과 비쉬반카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과 혼이 담겨진 전통의상이며, 화려한 자수와 신비스러운 문양이 그려져 있는 점도 비슷하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안녕과 평화, 행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도 담겨 있다. 이날 깜짝 패션쇼는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금까지 엄청난 전쟁의 상흔과 고통에 시달려온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로하고, 양국 간 문화외교 협력을 다지고자 열렸다. 장기간 전쟁으로 깊은 실의에 빠져 있는 우크라이나의 잔혹한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후원을 통해 많은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성금도 전달됐다.

이 자리에서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대사는 "한복은 한국의 전통을 반영한 예술작품"이라며 "한복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에서도 오랜 철학과 국가 정체성을 담고 있는 우크라이나 민족의상 일부인 비쉬반카를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침공 이후) 오늘날에는 자수문양 셔츠가 우크라이나인의 굽히지 않는 정신의 상징이 되었으며 자유, 국가 가치 및 전통 보존을 위한 우리의 투쟁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에선 매년 5월 셋째주 목요일을 '비쉬반카의 날'로 정하고, 모든 국민이 비쉬반카를 입고 평화와 축복을 기원하며 축제를 즐긴다.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2022년에는 왕년의 할리우드 액션스타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과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의기투합해 비쉬반카 축제에 동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비쉬반카는 이 전쟁에서 우리의 신성한 부적"이라고도 했다. 우리도 '한복의 날'이 있다. 지난 1996년부터 한복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높이고 일상에서 한복 입기를 권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만 처음에는 매월 첫째 토요일이었다가 이후 매년 10월이나 12월 주간단위 문화행사로 진행돼오다 2013년부턴 매년 10월 문화주간으로 바뀌는 등 다소 애매하다. 문화는 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이자, 역사적 코드가 녹아든 문양(文樣)이다. 인간이 저지른 참혹한 전쟁속에서도 문화는 생존과 희망의 꽃을 피운다.
영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이자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는 러시아 공습으로 파괴된 참혹한 현장 곳곳에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로하는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때마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날 수도 있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한복'과 '비쉬반카'의 콜라보 무대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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