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일럿'서 여장 하고 돌아온 조정석
111분 간 남녀 오가며 온갖 코미디 연기
"여장 워낙 많이 해 부담감 전혀 없었다"
뮤지컬 '헤드윅' 등서 이미 여장 경험 多
"관객 기분 살리는 코미디 연기 좋아해"
"원맨쇼? 코미디는 동료 없이 불가능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배우 조정석(44)은 아마도 국내 배우 중 여장(女裝)을 가장 많이 한 배우일 것이다. 뮤지컬 '헤드윅'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수도 없이 여자가 돼 무대에 올랐고, 최근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에서도 여자로 변신했다. 몇 해 전엔 팬들이 여장 합성한 짤(온라인 이미지 컷)을 만든 게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져 나기도 했다. 이쯤되면 그는 여장 전문가다.
조정석은 아마도 최근 국내 배우 중 코미디 연기를 가장 많이 한 배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이지 외면하기 힘든 조합이다. 조정석이 여장을 하고 코미디를 한다. 영화 '파일럿'(7월31일 공개)이다. 그는 "여장을 해본 경험이 쌓여서 부담스러운 건 없었다"며 "꼭 여장이 아니더라도 관객이 내 연기를 보고 좋아해주고 웃어준다면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행복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미디는 관객을 기분 좋게 한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고,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다"고 덧붙였다.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으로 이름이 알려지며 TV 예능프로그램에도 나온 한정우의 이야기. 잘나가던 한정우의 인생은 술자리에서 무심코 내뱉은 성희롱 발언 한 번으로 단번에 나락으로 향한다. 그는 직장을 잃고, 이혼을 당한다. 파일럿으로 재취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육비와 대출 이자 압박을 받으며 내몰리자 결단을 내린다. 동생 신분을 활용해 여성 파일럿으로 취업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한정우는 한정미가 돼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조정석은 한정우·한정미를 맡아 더할 나위 없는 연기를 한다. 한정우일 때는 자칫 비호감일 수 있는 캐릭터를 특유의 넉살로 미움 받지 않게 하고, 한정미일 때는 남자가 여장을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각종 에피소드를 아우르며 웃음을 끌어낸다. 한 마디로 조정석에게 '파일럿'은 맞춤 슈트처럼 딱 맞아 떨어진다.
"여장이 있어서 선택을 한 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여장을 해봤기 때문에 이 작품을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죠. 하지만 결국 재밌었기 때문에 선택한 겁니다.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그 작품에서 제 모습이 딱 상상이 되는 시나리오입니다. '파일럿'이 그랬어요. 한정우를 연기하는 제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한정미가 됐을 때 어떤 목소리를 낼지까지도요."
조정석은 한정미가 되기 위해 7㎏을 감량했다. 여장 남자라는 걸 관객 모두 알지만, 그래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 같아야 관객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의상팀과는 사흘 간 매일 5~6시간 정도를 한정미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완성된 조정석의 한정미는 꽤나 그럴싸하다. "긴 머리는 안 어울리더라고요. 옷은 쿨톤으로.(웃음) 특히 원피스가 잘 어울렸고요. 여성 속옷은 워낙 여러 번 입어봐서 특별히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완벽에 가깝게 여장했지만, 불안을 아예 없앨 순 없었다. 웃겨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데다가 관객이 납득할 만한 여장 설정이 돼야 했다. 조정석 뿐만 아니라 감독 포함 전 스태프가 이같은 우려와 압박감을 안고 촬영했다고 한다. 조정석은 "그럴 때마다 결국 진심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하고요. 저의 진심과 한정우의 진심을 담아내면 관객이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작위적인 연기를 하지 않는 게 중요했고요. 가령 한정미의 목소리를 낼 때도 제가 소화 가능한 톤에서 낸다는 거죠."
열심과 진심 그리고 조정석은 한 가지를 더 얘기했다. 바로 편안함이다.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일 때 최상의 코미디가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가장 편안한 상태라는 건 평소와 다름 없는 상태라는 의미였다.
"저한테 편안한 상태라는 건 특별한 게 아닙니다. 제 자신에게 제약을 걸지 않는 겁니다. 징크스라든가, 슬럼프라든가, 트라우마라든가 그런 걸 허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 루틴도 없어요. 그것에 얽매이는 게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럴 때도 전 그걸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컨디션 그대로 자연스럽게 하려고 해요. 그런 상태에서 나오는 연기가 또 기가 막힐 때가 있거든요.(웃음)"
조정석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코미디 연기, 코미디물에 출연하는 것에 어떤 거리낌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는 "코믹 연기에 대한 이미지 걱정은 나보다 주변에서 더 많이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코미디 영화를 고르게 되는 것, 코미디 연기를 하는 건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가 즐거운 걸 택한 결과일 뿐이라고 했다. "이것만 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걸 안 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는 얘기였다.
오는 31일 개봉을 앞두고 각종 시사회를 통해 '파일럿'이 공개되자 "조정석 원맨쇼"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조정석은 "그런 극찬을 받아서 행복하지만 코미디는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저 혼자서 재밌게 절대 못해요. 제 옆에 누가 있어야 하고, 그 누군가와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코미디가 극대화 되는 거죠. 극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 원맨쇼라는 것도 다 동료 선후배 배우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나온 얘기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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