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예산심의권은 빠져
정부가 '인구전략기획부'를 새로 만드는 것은 한국의 인구구조가 그야말로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째 전 세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초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고, 코앞에 놓인 초고령사회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부총리급' 부처로 만들며, 예산심의권도 부여한다. 문제는 인구부가 언제 출범할지 가늠이 되지 않고, 출범해도 '반쪽짜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법안대로라면 인구부 장관은 '저출생' 예산에 대해서만 심의권한을 갖는다.1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에는 '인구전략기획부 장관에게 저출생 예산에 대한 사전심의 권한과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인구위기 대응정책을 평가하고 환류하는 등 강력한 기획·조정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인구 문제의 또 다른 축인 고령화 관련 예산심의권은 빠져 있다.
'저출생 및 인구 고령화에 대비하는 기획 부처'라는 것이 인구부의 신설 목적인데, 저출생에 대해서만 주요 권한을 주는 것이다. 한국은 내년 고령인구 비율이 20% 이상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한 인구분야 전문가는 "저출생 문제 때문에 생긴 결과가 고령화이고, 저출생·고령화가 분리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구구조 대응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이라며 "고령화 예산심의권이 빠지면 인구부로서는 제 역할을 다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심의권만으로는 큰 힘이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인구 전문가는 "예산심의권을 준다고 해서 인구부가 그 예산을 마음대로 쓸 수는 없을 것 같다"면서 "예컨대 인구부가 올해 예산을 편성하고 내년에 더 많이 편성을 요청했을 때 기획재정부에서 흔쾌히 편성을 해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특별회계나 기금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인구부가 예산 권한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분야 전문가들은 인구 문제를 전담해 다루는 국책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나라 경제개발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듯이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책연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인구정책 연구조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KDI,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에 흩어져 있어 각 부처에서 용역과제를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은 "지금 인구정책은 여러 연구원에서 각각 관련 주제로 분절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새로운 부처의 미션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명확하고, 제대로 인구전략을 세우고 종합 기획·평가·조정을 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전문 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에 KDI의 과거 기능처럼 인구문제 전반을 연구할 수 있는 국가 인구연구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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