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는 예술, 음악, 텍스트, 무대 등이 조화를 이루는 종합예술이라는 개념을 창조하며 오페라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특히 바그너는 무한 선율과 라이트모티브라는 파격적인 기법을 도입해 관객들에게 전례 없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바그너 이전 오페라는 아리아, 레치타티보(대사를 노래하듯 말하는 형식)로 구분이 있었으나, 바그너 음악은 끊임없이 흐르게 해 감정을 지속하게 하고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로 느끼게 했다. 또 라이트모티브는 인물, 감정, 상황을 상징하는 주제 선율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이야기와 음악 사이의 연관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음악적 실험은 청중들에게 강렬하고도 최면적인 효과를 일으켰다.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단순한 신화가 아닌 철학적 주제로 확장했다. '파르지팔'에서 기독교적 구원을 다뤄 니체와 같은 사상가들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오페라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특히 4부로 구성된 '니벨룽의 반지'는 사랑, 권력 투쟁, 배신을 다루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까지 담아 다층적인 매력을 심었다.
바그너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감동을 주며 사랑받고 있지만 그의 사상에는 어둠도 존재한다. 그의 반유대주의적 성향은 작품과 글 전반에 드러난다.
일관되게 그러한 태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히틀러가 그를 예찬했으며, 바이로이트 축제에 해마다 참석해 그에 대한 광적인 지지를 보였다. 이로 인해 그의 음악은 한때 나치즘과 결부되기도 했으며 현재 이스라엘에서 금기시된다.
그의 반유대주의적 성향은 청중에게 심각한 잘못을 위대한 예술로 감출 수 있을까라는 고민거리를 남긴다. 국립오페라단은 바그너가 가지는 명과 암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가 던졌던 인간 본질과 철학적 질문들에 집중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내년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무대에 세우고 숙원사업 중 하나인 '니벨룽의 반지'를 선보여 오페라가 우리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예술임을 보여줄 것이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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