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면서 중등 교과서에도 실린 '메밀꽃 필 무렵'과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로 잘 알려진 작가 가산 이효석(1907~1942)은 근현대 문학가 중에서 구체적으로 지리와 지리적 개념을 많은 작품과 글에 직접 언급한 보기 드문 작가다. 가산은 태생적인 자연미(自然美)를 존중하면서도 ‘첨단의 도시미(都市美)’에도 천착한다. 자연미와 도시미, 서구미(西歐美) 등과 함께 도시와 농촌, 산골, 해안, 대하천 등에 있어서 장소와 지리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분석과 기술이 탁월하다.
이효석은 한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비교하면서 풍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위도와 지리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문학과 풍토 내지 문학과 기후는 결코 새로운 제목은 아닐 것이다. 풍토와 기후는 생활을 규정하고, 생활을 비추어낸 것이 문학일지니 문학과 풍토의 관련은 심히 큰 것이다. 격정이 없는 이 가난한 풍토와 거세된 환경에서 발자크적 훌륭한 문학을 낳는다는 것은 극난의 일이다.”(수필 '북위 42도' 중)
작가는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평창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봉평의 자택과 거리가 40㎞ 떨어져 있는 학교 인근에서 하숙을 했다고 하는데, 이 초등학교가 평창군에서 유일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친은 진부면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부친의 직장(교육직 공무원)으로 인해 경성(서울)에서 잠시 살았지만 다시 평창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그 후 경기고보와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총독부 도서과 검열계에 취업해 있는 동안, 서울에서 1920년부터 1930년까지 10년을 살았다.
이효석은 또 1931년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의 미술학도 이경원과 결혼을 하면서 함경북도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약 4년을 살게 된다. 그 뒤 가산은 1934년부터 1942년 세상을 뜰 때까지 평양에서 지내게 된다. 평양에서는 숭실전문학교(1936~1938)와 대동공업전문학교(1939~1942) 영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사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함북 경성과 평양에서 만들어졌다. 경성과 평양에 있는 동안에는 만주와 연해주 등을 자주 여행했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여행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만주와 연해주 외 일본, 중국 등 가까운 해외 방문 관련 내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평양에 대한 작품들에서 대동강 지형, 평양의 문화유적, 대동강 보트 놀이, 평양의 식당, 평양의 다방, 꽃집, 주점, 공연장들은 평양의 도시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서 언급된 시설들이다. 그는 다방을 비롯한 주점과 요정도 늘어나서 평양의 중심가가 번성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물위' '유도소식' 등). 또한 대동강, 을밀대, 부벽루, 전금문(轉錦門), 청류정(淸流亭), 대성산 고구려 유적 등의 명승과 문화유산 등을 묘사한다('은은한 빛'). 그 외 반월도('물위'), 주암산('유도소식') 등의 자연 경관들도 언급된다. 평양의 도시 구조와 인접한 근교와 원교를 결합한 거대 도시권에 대한 의견도 가진다.
“광장이 있고 언덕이 있으며 폭포가 있고 호수가 있어서(...) 호수에 배를 띄우고 광장에 홀을 만들고 조명을 밝히고(...) 온갖 근대시설을 갖춘다면(...) 평양이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로 발전하여(...) 평양은 가까이에 강을 끼고 있으니 행복한 줄 알아야(...) 여름철에 평양부 인구의 몇 분의 일이 (여기서) 살다시피한다.”('물위' 중)
‘메밀꽃 필 무렵’을 제외하면 그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들은 대부분 현대적, 도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의 일상생활 장소와 지역들은 도시, 도심지와 교외 주택, 휴양지, 국내외 여행지 등이 주류를 이룬다.
도회적, 모더니즘적인 취향이 많았던 이효석의 작품에서 도시적인 ‘경물(景物)’에 대한 것이 많다. 작품에 언급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커피(자바, 모카 등 품종도 언급), 맥주, 위스키, 포도주, 머루주, 아파트, 호텔, 백화점, 서점, 다방, 레스토랑, 카바레, 방송국, 신문사, 음악 연주홀, 영화관, 토키(talkie), 대학 강의실, 만찬, 정원수, 보일러, 욕실, 목욕실, 목욕통, 보트, 별장, 극장, 냉난방, 온실산 양딸기, 잼, 소오세지, 버터, 통조림, 우유, 크리스마스 트리, 색 전기(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스키, 스케이트, 등산 피켈 등이 보인다.
이러한 용어들은 지금으로 보아도 그리 오래되거나 낯설지 않고, 경제적 수준 면에서도 높은 편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앞선 ‘댄디보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셈이다.
이효석의 잘 알려진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1938)는 그의 서구적 모더니즘을 매우 잘 보여준다. 어두운 식민지 시절에 이러한 낭만적인 모습을 글로 남기기는 쉽지 않겠지만, 혹은 어두운 시기를 기피하면서 개인적인 생활에 은닉되는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30여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 시중은 조련치 않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낟은 찧어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올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 전기로 장식하는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특별한 예를 들면, 그의 수필 '채롱'(조선일보, 1938년 4월 28~5월 5일)의 '우유' 편을 본다. 우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으며 시민들의 생활과 연관된 미래지향적 도시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 ‘현대인의 환상’이기도 하다.
“시민마다가 우유를 풍족히 마실 수 있다면(...) 거리의 복판마다 우유 탱크를 세우고(...) 시민에게 자유롭게 마시게 하거나(...) 수도와 마찬가지로 우유도(牛乳道)를 만들어 각 가정에서 나사만 틀면(...) 언제든지 쏟아지게 하는 설비를(...) 충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이효석의 작품들 중에서 공간 인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작가 이효석은 공간과 장소에 관해 서지학적 발굴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자신의 평전적 요소와 함께 문학지리 분석의 대상이다. 평양에서의 생활을 담은 그의 작품들이 좋은 사례이다. 이는 100년 전 평양 연구의 역사지리이기도 하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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